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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교육의 맹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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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지난 9일 오후 3시 경희대 청운관. 이정식 미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의 ‘한국 현대사 특강’은 우리 한국사 학계가 놓치고 있는 맹점(盲點)을 되돌아보게 하는 자리였다.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석좌교수이기도 한 이정식은 “세계사를 알고 동양사를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한국사를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사-동양사-한국사의 상호 연관성은 모든 역사 서술에 적용되지만, 한국 현대사의 경우는 특히 더 그러하다고 했다.

 지난 2일 타계한 로버트 스칼라피노 UC버클리대 명예교수와 함께 1973년 『한국공산주의운동사(Communism in Korea)』를 공저로 펴내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다. 50년 넘게 한국 현대사를 연구해온 80대의 노학자는 “스탈린의 제왕적 위치를 알아야 우리의 해방 후 정치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21세기에 다시 보는 해방 후의 역사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도 했는데, 옛날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소련과 중국의 자료가 발굴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역시 계속 공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미국 자료는 물론 중국·일본·러시아 자료를 모두 봐야 한다는 그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결국 언어 해독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1931년생인 이정식은 제국주의 일본 치하에서 태어났기에 일본어를 할 줄 알고, 중국 만주에서 성장하면서 중국어도 배웠다. 6·25전쟁 때는 미군의 중국어 통역을 맡을 정도였다. 미군 장교와 선교사의 도움으로 UCLA와 UC버클리에서 공부했기에 영어에도 능통하다. 이정식은 남다른 전쟁 경험을 했다. 1937년의 중·일전쟁, 41년의 태평양전쟁, 45~48년의 중국 국민당-공산당 내전, 50년의 6·25전쟁 등 모두 4차례나 겪었다. 지금에 와서 보면 잇따른 전쟁 속의 고난이 마치 새옹지마(塞翁之馬)처럼 그의 연구의 자양분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엔 ‘내 운명은 왜 이런가’ 하는 한탄도 했다고 한다.

 고난 속에서 여러 외국어를 익힌 것만 그의 일생에 도움이 된 게 아니었다. 중국 국공내전 때는 만주의 집 앞에서 터지는 기관총 소리를 그대로 들어야 했다. 남다른 체험은 해방 후 만주-북한-남한에서 벌어진 사건을 자연스럽게 연계 지어 생각하게 했다. 그는 “국공내전 중이던 46년 5월 중국 공산군이 국민당군에 밀려 북한 지역으로 퇴각한 이후 북한은 중국 공산화의 후방기지로 변했다”고 했다.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33년 만주로 이주했다가, 다시 48년 북한으로 귀환한 후 1·4후퇴 때 서울로 피란 온 그의 발언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자료 조사를 구체적 체험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민족주의운동사』『여운형:시대와 사상을 초월한 융화주의자』『대한민국의 기원』등을 펴내기도 한 그의 필생의 특강이 될 이번 강연의 두 번째 행사가 16일 오후 3시 경희대에서 열린다.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