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돈 받고 골병 … “마필사는 경마장 노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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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한 달에 12번 밤샘 숙직을 서기도 했다. 말을 타다 떨어져 골절과 뇌진탕을 당해도 해고의 위험 때문에 치료도 못 받았다.”

 지난 9일 경북 경주의 한 모텔에서 목을 매 자살한 마필관리사 박모(34)씨가 유서에 남긴 말이다. 그는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7년째 말을 관리하는 마필관리사로 일해왔다. 그는 자신의 직장에 대해 “교도소에서 사역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경마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박씨가 자살까지 한 배경에는 불합리한 마필관리사 채용 시스템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부산경남경마공원엔 모두 220여 명의 마필관리사가 말을 훈련시키는 조교사 밑에서 일을 하고 있다.

조교사협회가 마필관리사를 채용하는 서울과 달리 부산은 개인사업자인 조교사가 마필관리사를 직접 채용한다. 조교사가 마필관리사의 생계를 쥐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좋지 않은 소문이 난 마필관리사는 다른 조교사 밑으로 옮기기도 어렵다. 한 전직 마필관리사는 “부산의 마필관리사는 조교사를 모시는 현대판 노예”라며 “죽도록 일만 시키는 새우잡이 배에 팔려 온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박씨가 소속된 마방의 경주마는 모두 17마리로 최근까지 두 명의 마필관리사가 관리해왔다. 서울에선 마필관리사 한 명당 3마리, 일본에선 마필관리사 한 명이 두 마리를 돌보는 게 평균이다. 평소 말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경주 전에는 말을 타고 말의 상태를 점검하기 때문에 낙마 등 부상도 잦다. 박씨는 “7년간 골절만 다섯 번, 뇌진탕 한 번을 당했다”며 “병원에 입원하면 (마방에서) ‘언제 나오느냐’고 자꾸 전화를 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유서에 적었다.

 마필관리사는 업무 강도에 비해 임금도 낮다. 임금도 조교사 마음대로다. 마사회에서 조교사에게 내려주는 마필관리사의 임금은 1인당 월 340여만원(2011년 기준)이지만, 조교사를 거치면서 실제로는 월 170만~200만원을 손에 쥐기도 한다. 서울은 마사회에서 1인당 500여만원을 마필관리사 몫으로 조교사협회가 넘겨 받는다. 근속 연수 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마필관리사 대부분이 비슷한 월급을 받는다.

경마 성적에 따라 소득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부산 시스템의 문제다. 서울 경마장의 경우 고정 임금과 성적에 따른 성과급 비율이 9대 1이다. 그러나 부산은 성적에 따른 임금이 전체 임금의 40%를 차지하고, 이익 배분 기준도 제각각이다.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 노동조합의 문수열(42) 부산경남지부장은 “홍콩 등에선 마필관리사를 마사회가 직접 고용한다”며 “고용 안정과 월급 체계를 투명하게 해 마필관리사들이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조교사를 꿈꾸던 박씨는 최근 불미스러운 일로 조교사가 되기 어려워졌다”며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살의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위성욱 기자

◆마필관리사=마사회 경마장이나 민간 승마장에서 말을 관리하는 사람. 먹이 주기, 목욕, 청소, 발굽 관리 등을 담당한다. 경주 전 말의 약물검사와 장구 착용 상태 확인, 경주 후 마사지와 목욕 등도 마필관리사의 일이다. 별다른 자격요건은 없지만 마사회 경마장에서 일하려면 기초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조교사=마주에게 말을 위탁받아 전문적으로 말을 훈련시키는 사람으로 마필관리사를 지휘한다. 마필관리사가 경력을 쌓아 조교사가 되기도 한다. 면허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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