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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저 선무당들을 어쩔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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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정재숙
문화스포츠 에디터

자연재해인 쓰나미는 주로 일본의 일이며 우리에게 큰 걱정거리는 아니어서 다행인데, 한편으로 우리 사회는 일종의 쓰나미 증후군 같은 것이 일상이 된 듯하다. 옷차림의 유행이나 대중문화의 흐름 같은 것이 다양한 갈래로 공존하기보다 마치 떴다방이나 인플루엔자처럼 한꺼번에 휩쓸고 지나가는 데 우리는 익숙하다.

 1990년대였던가, 주말에 티브이 채널을 돌릴 때마다 찜질방 옷 같은 것을 입은 남녀 청춘들이 답답한 스튜디오 안에서 우르르 몰려다니곤 해서 도대체 하나같이 뭐 하는 수작인가 싶었다. 그러더니 지금 2010년대에는 어느 채널에서건 각종 오디션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있다. 20여 년 전 그 찜질방 옷들의 행렬보다는 훨씬 더 세련되고 흥겹고 수준 높지만, 죄다 한 방향으로 와르르 몰려간다는 점에서는 역시나 쓰나미 증후군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정치·사회의 어젠다와 관련된 부분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목청 터져라 싸우던 이슈도 대개는 그저 쓰나미처럼 휩쓸고 지나가며 폐허만을 남길 뿐이다. 그런 과정에서 모두가 상처 입고 우리 사회가 지닌 에너지와 발전의 잠재력이, 우리의 미래가 낭비된다.

 몇 달 전 돈만 내면 예비군 사격장에서 고등학생까지도 M-16 실탄 사격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국방부 발표가 나왔다가 전면 보류된 일이 있었다. 군은 중장기 안보교육의 일환이었다고 설명했지만 국민이 총과 탄환에 더 익숙해지길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군대도 수익사업에 나서겠다는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시장은 또 어떤가. 한때 ‘통 큰 치킨’으로 요란하더니 나중엔 ‘통 큰 자전거’까지 등장해서 소란스러움의 뒤를 이었다. 통이 큰 만큼 소리는 시끄러웠다. 치킨이 통 클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로는 손해 보더라도 고객들을 매장에 끌어들이려는 영업 전략으로 가능했고, 자전거의 경우는 원체 싸구려 부품으로 조립해서 굴러가다가 부서질 지경이었으니, 이런 물건을 팔 생각을 한 걸 보면 통이 크긴 컸다.

 소비자 대중은 좌우간 싼값을 원하게 마련이고, 시장은 본래 포퓰리즘에 지배당하는 곳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 시장에 익숙한 대통령 후보가 시장의 상술을 정치판에 끌어들인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5000원짜리 통닭이 그 자체로는 수지를 맞출 수 없는 상품이었던 것처럼, 반값 등록금이니 반값 아파트니 하는 공약 또한 본디 성립될 수 없는 것이었다. 손님만 모으면 된다는 식으로 반값으로 후려쳐 정치판에서 표를 모았으니, 이야말로 포퓰리즘의 교과서 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 정권은 좌파 정권이 장악한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 10년 동안, 아니 그 이전부터 나름의 내력을 지닌 대학 등록금을 단칼에 반값으로 깎는다면 MB 정권은 어쩌면 극좌 정권인 셈이 되니 누구라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포퓰리즘이란 부산의 저축은행 사태와 같은 것이다. 서민 고객들은 통상의 이율을 뛰어넘는 높은 이자를 조그마한 은행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별반 의혹을 품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돈을 주무른 책임자들은 상상 이상으로 무책임했으며 부도덕했고 무능했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지금 이 나라는 전체가 마치 조울증(躁鬱症)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조증(躁症)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지자체는 국민의 세금으로 쓸모없는 구조물 세우느라 바쁘고, 짓자마자 허무느라 바쁘다. 모든 게 부풀려진다. 곳곳에 작두를 세우고 뜀뛰는 무당들 천지다. 수많은 거품 유발자들과 함께 앞으로 다가올 울증(鬱症)의 시기를 어떻게 건널 것인가?

정재숙 문화스포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