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16만 대장경 또 하나의 천년 불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장경각에서 동진 스님이 도자대장경을 살펴보고 있다. [양산=송봉근 기자]

경남 양산 통도사의 17개 암자 가운데 하나인 서운암. 8일 오전 암자 주차장을 지나 산길로 올라가자 기둥이 검은색인 4각형 기와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는 장경각(藏經閣)이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왼쪽 회랑으로 들어서자 바닥은 대리석이다. 양 옆으로는 화강석 틀로 짠 보관대가 길게 놓여 있다. 유리로 막아 놓은 보관대 안에는 16만 장에 달하는 도자대장경(陶瓷大藏經)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도자대장경은 경남 합천 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의 양면을 도자기로 제작한 것이다.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보관 중인 도자대장경. [양산=송봉근 기자]
16만 도자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서운암의 장경각. [양산=송봉근 기자]

 도자대장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991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운암의 성파(73) 큰스님이 “남북통일을 염원하고 민족문화를 대대로 보존하자”며 팔만대장경을 도자기법으로 만드는 불사(佛事)를 시작했다. 하지만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경남 산청에서 구해 온 흙으로 도판(陶板)을 만들어 흙 가마에서 구워보니 도판이 뒤틀리거나 휘는 현상이 생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기술자까지 불러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전기가마 6개를 제작했다.

장경각의 내부 모습. 목재를 보호하고 광택을 내기 위해 검은색으로 옻칠이 돼 있다. [양산=송봉근 기자]

 도판에 글씨를 새기는 것은 판화의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했다. 800도에서 초벌구이를 한 도판에 팔만대장경 영인본(복제본)을 올려놓고 유약을 바르면 글씨 부분이 도판에 찍혀 나온다. 이후 도판에 유약을 다시 바르고 1250도에서 재벌구이를 해 경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나무에 글씨가 양각(陽刻)된 팔만대장경과 달리 도자대장경은 평면이지만 글씨 크기와 모양은 팔만대장경과 똑같다. 도판 한 면에만 글씨가 있어 도자대장경은 팔만대장경(8만1258장)의 2배인 16만2500여 장이다. 한 장이 가로 52㎝, 세로 26㎝, 두께 1.5㎝로 팔만대장경과 거의 같지만 무게는 4㎏으로 1㎏가량 더 나간다. 16만여 장의 무게만 650t에 달한다. 성파 스님 등 스님 5명과 인부 20~30여 명이 2000년 9월까지 9년여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 성파 스님은 “대장경을 만드는 건 하나의 수행 정진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도자대장경을 보관할 장경각을 짓고 16만 장의 대장경을 순서대로 안치하는 데만 11년이 더 걸렸다.

 2002년 착공한 장경각은 자금난으로 공사중단과 재개를 거듭한 끝에 지난해 11월 완공됐다. 760여 년간 팔만대장경을 보존해 온 해인사 장경각과 비슷한 모양이다. 지난 20년간 도자대장경을 만들기 위한 사업에 도·시비와 통도사 예산 등 100억원이 넘게 들어갔다. 장경각에 도자대장경 봉안을 마무리한 서운암 측은 최근 이를 일반에게 개방했다. 서운암의 동진 주지스님은 “불경을 16만여 장의 도자기에 기록한 것은 불교사와 도자 역사에서 처음”이라며 “오래도록 전해지도록 잘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양산=황선윤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