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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걸리면 동네병원 가듯 조현병도 통원치료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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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다 클리닉에서 히라바야시 요코(왼쪽)씨가 히다 원장과 함께 조현병 환자들이 만든 동호회 소식지를 소개하고 있다. [권병준 기자]

일본 지바현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 중인 히라바야시 유코(32·여). 낮에 장애인을 돕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그녀의 남편도 삽화를 그리거나 스티커를 만드는 평범한 디자이너다. 그런데 이들 부부에겐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 2주일에 한 번씩 동네 병원을 찾아 주사를 맞는 것. 식욕이 떨어지고 기분이 지나칠 정도로 좋지 않을 때도 의사와 상담한다. 이들 부부는 대체 무슨 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지역주민 거부감 없애기’도 주요 목표

히라바야시 부부의 병명은 망상과 환청이 나타나는 ‘조현병(調絃病)’. 가끔 ‘묻지마 범죄’에서 언급되는 병이다. 하지만 히라바야시 부부는 일반인과 똑같다. 오히려 서로의 증상을 잘 알고 있어 상대방을 더 배려한다.

 히라바야시 부부가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같은 동네 조현병 전문의원 ‘히다 클리닉’ 덕분이다. 2000년 일본에서 정신병 환자의 인권 문제가 부각된 적이 있었다. 당시 정부는 조현병 환자의 치료 정책을 ‘격리’에서 ‘통원’으로 바꿨다. 의료 권역을 300여 개로 나눈 뒤 권역별로 병상 수를 제한했다. 또 병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정신분열병을 통합실조증으로 바꿨다.

 그 결과 히다 클리닉 같은 지역 내 정신병원은 통원치료를 받는 환자가 확 늘었다. 지역 주민은 불만을 쏟아냈다. 정신병력이 있거나 치료 중인 사람이 같은 동네에 사는 게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히다 클리닉 히다 히로히사 원장은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1년에 두 차례씩 병원에서 음악회를 열어 동네 아이까지 모두 초대했다”고 말했다. 일본 대지진이 있었을 땐 부모가 제 시간에 돌아오지 못한 어린이집 아이를 위해 병원 안에 아이들이 머물도록 했다.

 히다 클리닉은 환자가 부담을 갖지 않도록 실내공간을 카페같이 꾸몄다. 긴장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환자는 주사를 맞으면서 기분이나 몸 상태·식욕 등을 노트에 적는다. 환자는 다른 환자와 증상이 심할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교환한다. 병원에선 환자들이 주사 맞는 것을 잊지 않도록 스탬프 카드를 만들어 커피나 차를 공짜로 대접한다. 이런 작은 노력이 모여 히다 클리닉의 조현병 주사 지속률은 95.7%에 달한다.

재발 막으려면 꾸준히 약 먹는게 중요

조현병은 재발할수록 뇌가 점점 망가지는 병이다. 이 때문에 꾸준히 약을 복용해 재발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권준수(대한조현병학회 이사장)교수는 “치료 결과가 좋아 약 복용을 중단하면 1년 이내에 70% 이상 재발한다”고 말했다. 특히 병에 대한 편견이 약 복용을 방해하기도 한다.

 편견은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이 높다는 오해도 불러일으킨다. 검찰청에서 발간하는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인 범죄율은 2.5%지만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1.8%에 불과하다. 야마노우치 요시오(전 후생노동성 정신질환보건과 과장) 후지타보건위생대 정신과 교수는 “정신질환자가 일으키는 범죄 중 특히 조현병 환자의 비율은 극히 낮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폭력적인 환자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일부 성격장애 환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는 지나칠 만큼 소심하다.

 야마노우치 교수는 “주사 한 번에 약효가 한 달씩 지속되는 치료제가 개발되는 등 환자 관리가 쉬워져 의사들의 치료 목표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신과 병상 수 증가, 한국이 유일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정신과 병상 수가 증가하는 유일한 국가다. 2000년 인구 1000명 당 1.23병상이던 병상 수는 2008년 1.72병상까지 늘었다. 국제보건기구(WHO)가 제시하는 적정 정신과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병상이다. 입원일 수로 비교하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2008년 기준 정신장애인 평균 입원일 수는 233일. 이는 호주(52.8일), 독일(25.3일), 미국(8일)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많다.

 ‘입원 적정성 평가’를 6개월 단위로 시행하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권 교수는 “퇴원 환자 중 25% 정도가 즉시 재입원하고, 퇴원 명령을 받은 환자 중 50%가 하루가 지난 다음 바로 입원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신병으로 입원하는 환자 중 조현병 환자 비율이 절반 이상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서둘러 재활·사회 복귀 지원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도쿄=권병준 기자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불렸던 병명이 올 10월 국회 심의를 통과하면서 조현병으로 바뀌게 됐다. 조현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라는 뜻. 정신세계를 조화롭게 균형 잡아 정상 생활을 가능토록 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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