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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vs 애플, 9개국서 30여 건 ‘창,방패’ 싸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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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호 14면

올 9월 26일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에서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전쟁이 불을 뿜었다. 삼성전자를 대리하는 바스 베르그휘스 반 워츠만 변호사는 “애플은 자신의 디자인 특허는 보석 박은 왕관이지만 삼성의 통신기술 특허는 필요 없는 쓰레기라고 주장한다”며 “사용료도 내지 않고 무단으로 특허를 쓰고 있는 애플이 성실하게 협상에 임하도록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대해 판매금지 명령을 내려달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독일 뒤셀도르프 법원에서 삼성 갤럭시탭이 애플의 디자인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이끌어낸 것을 꼬집은 것이다.

글로벌 IT업계 ‘대소송 시대’

이에 대해 애플 측 변호사인 뤼트거 클레이만스는 “삼성의 특허는 적절한 사용료만 내면 누구나 쓸 수 있는 표준특허”라며 “거의 1년간 협상을 진행 중인데 갑자기 판매금지 신청을 한 것은 애플 신제품 출시를 막으려는 의도”라고 반격했다. 법원은 애플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이 신청한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한 것이다. 표준특허 침해를 이유로 제품 판매를 금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독일과 네덜란드·호주 등에서 잇따라 판매금지를 당한 삼성이 처음으로 반격의 주먹을 휘둘렀지만 허공만 가른 셈이 됐다.

그렇지만 두 회사의 소송전은 이제야 시작이다. 가처분 소송을 통해 탐색전만 마친 단계다. 일반적으로 특허 소송은 가처분 신청과 본안소송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판매금지 또는 수입금지 가처분 신청은 특허를 침해한 제품의 판매나 수입을 임시로 막아달라고 법원에 신청하는 것이다. 민사법원에 신청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미국의 경우 수입금지 가처분 신청은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내게 된다. 신운철(K&S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는 “본안 소송에서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몇 년씩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위해 가처분 신청을 내는 것”이라며 “다만 본안 소송에서 패할 경우 상대방이 가처분 조치에 따라 본 손해를 배상해줘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설명했다. 가처분 소송에 이어 진행되는 본안소송은 특허침해금지 청구와 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한다. 보통 두 소송을 함께 진행한다. 여기까지가 민사소송 부분이다. 악의적으로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단하면 형사 고소를 할 수도 있지만 기업 간의 특허 소송이 형사 재판으로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삼성과 애플은 9개국에서 30여 건의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스마트폰용 모바일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를 만든 구글은 프로그래밍 언어인 자바 기술과 관련, 오라클로부터 20억~60억 달러 규모의 특허침해 소송을 당했다. 지적재산권 소송 정보 전문업체인 렉스머시나의 최고경영자(CEO) 조슈아 워커는 “미국 역사상 전례가 없는 최대 규모의 특허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 업체들이 경쟁사를 공격하거나 경쟁사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각종 특허를 비싼 가격에 사들이는 것이 냉전시대에 군비 경쟁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대소송 시대’는 애플의 아이폰·아이패드가 경이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벌어졌다.

하지만 제조업체의 민사 소송에서 끝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다. 예외적인 경우가 코닥과 폴라로이드의 ‘15년 전쟁’이다. 1976년 폴라로이드는 코닥이 즉석 카메라 관련 특허 12건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코닥이 8억7300만 달러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하고 즉석 카메라 시장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결과를 가져왔다. 코닥은 손해배상 외에도 즉석 카메라 사업에서의 손실 6억 달러, 공장 폐쇄 등 4억9400만 달러, 변호사 비용까지 물어야 했다. 폴라로이드는 손해배상을 받았지만 소송 과정에서 즉석 카메라 시장 자체가 줄어드는 바람에 결국 파산했다. 말 그대로 ‘상처뿐인 영광’이 된 셈이다.

이런 사례를 잘 알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은 결국 타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소송전을 벌였던 노키아와 애플은 올 6월 크로스 라이선스 협정을 맺었다. 양사는 공식적인 특허 사용료를 밝히지 않았으나 도이체방크의 카이 코셸트 애널리스트는 “애플은 노키아에 4억2000만 유로를 우선 지급하고, 분기별로 9500만 유로를 추가로 주는 조건”이라고 추산했다.

겉으로는 험악해 보이는 삼성과 애플의 소송전도 마찬가지다. 신용평가업체 피치의 앨빈 림 애널리스트는 “삼성이 스마트폰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자 위협을 느낀 애플이 견제에 나선 것”이라며 “현재까지는 애플이 앞서가는 상황이지만 삼성이 몇몇 지역에서 반격에 성공하면 결국 양측이 타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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