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유적 모르고 방치? 대구 마애불 ‘나이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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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대구 읍내동 안양마을 야산 암벽에 부조된 본존불.

대구 북구 읍내동의 안양마을. 칠곡중학교 북쪽 400여m 지점에서 왼쪽 샛길을 따라 1.5㎞쯤 가다 보면 나타나는 마을이다. 진입로는 차량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다. 마을에는 9가구가 살고 있다. 이 마을 앞 야산 절벽 바위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삼존불 등 선각상(線刻像·선으로 그린 그림) 수십개가 그려져 있다. ‘읍내동 마애불’이다. 마애불은 바위에 새겨진 불상을 말한다. 대구시 문화유적분포지도에 나와 있지만 문화재로 지정되진 않았다.

 이 마애불의 제작 시기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마애불이 신라시대에 조성됐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사실로 밝혀진다면 국보나 보물급 문화재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은 최근 “마애불의 손 모양 등 형상을 종합해 볼 때 7세기 전반기 양식”이라며 “신라시대 마애불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마애불(본존불)은 높이 4.6m, 폭 7.5m의 W자를 거꾸로 한 형태의 바위 중간에 높이 180㎝ 크기로 부조(浮彫·볼록하게 새긴 것)돼 있다. 양 옆에는 높이 110㎝의 보살입상에서 14㎝ 크기의 여래좌상 등 다양한 그림이 새겨져 있다. 본존불 1개와 선각상 31점, 9층 탑 1점 등 모두 33점이다. 특히 암벽의 오른쪽 상단에는 다리를 꼬고 앉아 웃는 모습의 반가삼존상이 있다. 반가상 3개가 그려진 것(삼존상)이 발견된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라고 박 관장은 설명했다. 그는 “불상 등이 단단한 사암에 새겨져 10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구시의 의견은 다르다. 1991년 대구시 문화재위원이 현장을 조사한 뒤 신라시대 마애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불상의 코가 신라시대 양식과 달리 뾰족한 편이고 주변에 사찰 터도 없어 신라시대 유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읍내동 마애불은 그동안 방치돼 있었다. 5년 전부터 마애불 앞 토굴(민가)에서 생활하는 보덕 스님이 관리를 맡고 있다. 그는 “바위 위에 나무가 많아 암벽이 무너질 지경이었다”며 “나무를 베내고 주변을 정리해 훼손을 막았다”고 밝혔다. 주민 윤정한(52)씨는 “옛날 암벽 앞에 연못이 있었고 누군가 배를 타고 가 마애불을 새겼다는 말을 마을 어른들에게서 들었다”며 “신라시대에 새긴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제기되자 대구시가 재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대구시 김희석 문화재담당은 “이번 주 중 전문가에게 의뢰해 진위를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홍권삼 기자

◆마애불(磨崖佛)=암벽·동굴 등에 조각한 불상으로 인도에서 시작, 중국·한국·일본 등에 퍼졌다. 바위에 튀어나오게 새긴 부조, 안으로 들어가게 새긴 음각, 선각한 것이 있다. 충남 서산시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제84호),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국보 제199호), 경기도 이천시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982호), 충북 충주시 봉황리 마애불상군(보물 제1401호)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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