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DJ가 챙겨야 할 경제현안 10가지

중앙일보

입력

집권 후반기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주요 경제현안은 무엇인가?

본지는 경제전문가 20명에게 15가지 경제 현안을 제시하고 이 중 정부가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5가지를 고르도록 했다.

금융 구조조정 추진은 전체 응답자 20명 중 13명이 지적, 가장 응답률이 높았다. 다음은 경제정책의 신뢰성·투명성 확보로 11명이 지적했다.

공적자금의 투명한 조달과 운용, 노동시장 개혁과 노사정 관계 재정립, 국제수지 안정, 채권시장 조기 안정은 각각 9명이 지적했다.

금융 개혁, 노동 개혁 등 이른바 4대 개혁은 모두 10대 주요 현안에 포함됐다. 재벌 개혁(기업 개혁)
은 공동 7위,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공동 9위에 올랐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남북경협 활성화에 대한 지원은 의외로 저조, 공동 7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대우자동차 등 대우 계열사 문제 조기 처리는 공동 9위로 조사됐다.

서베이가 안고 있는 한계지만, 당면 경제현안들을 어떻게 카테고라이즈하느냐가 문제였다. 유한수 전경련 전무와 정세균 민주당 의원이 지적했듯이, 채권시장 안정과 증시 안정은 금융 구조조정과 관련된 문제들로 금융시장 안정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로 묶는 쪽이 더 타당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묶으면 너무 강력하고 포괄적인 카테고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들을 ‘구조조정을 통한 금융시장 안정’식으로 묶었다면 응답자의 약 3분의 2가 지적한 금융 구조조정의 응답률이 더 높아졌을 수도 있다.

각자 지적한 5가지 현안 중 강조하고 싶은 것 두 가지를 따로 고르게 한 결과 금융 구조조정(7명)
, 경제정책의 신뢰성·투명성 확보(7명)
, 재벌개혁 추진(6명)
등이 많이 지목됐다.

▶먼저 금융 구조조정은 왜 대통령이 챙겨야 하나?

‘우량 은행간 합병을 통한 은행산업 선진화와 제2 금융권 시장의 안정화를 빨리 추진하지 않으면 국내 기업의 대외경쟁력이 떨어지고 시중자금 부동화로 거시경제 지표가 불안해질 뿐더러, 국제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신뢰를 잃어 자칫하면 국민경제 전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융 구조조정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국민과 투자자의 손실이 커진다(김정태)
.’

‘대통령은 무엇보다 공적자금의 사용내역과 효율성 문제를 점검해 봐야 한다. 돈을 어떻게 썼길래 은행들이 여전히 부실한지 제대로 따져 봐야 하고 은행 합병은 그 다음이다(이필상)

‘합병은 물론 시장 논리에 따라야 한다. 지금의 은행 합병 추진은 정치논리에 좌우되고 있다. 어떤 형태가 됐든 구조조정 방식을 빨리 결정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정문건)
.’ ‘지금 우리 경제의 상황은 ‘실물 호황·금융 불안’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남북경협 등 어떤 호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금융 불안을 해소하지 못하면 호재를 살릴 수 없다(유한수)
.’

대통령이 경제정책의 신뢰성·투명성 확보에 주력해야 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경제주체들이 신뢰하지 않으면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전주성)
.’ ‘지금 경제정책의 효과가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시장이 정책당국자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겉만 치료하고 속병은 덮어두는 식의 이중적인 경제정책은 시장에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이필상)
.’ ‘이런 상황은 환란 직후 효과적인 정책으로 단기간에 위기를 극복한 것과도 퍽 대조적이다(유한수)
.’

그럼 정책당국이 왜 신뢰를 잃게 됐나?

‘경제팀 내부에서 의견조율이 되지 않고, 장관들은 말을 바꾸고, 공적자금 조달을 둘러싸고 솔직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유한수)
.’ ‘햇볕정책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에 관해서도 알려진 게 거의 없다(강석훈)
.’

신뢰회복을 위해선 ‘대통령이 나서 관료들의 보신주의를 차단하고 선거·남북정상회담 등을 의식한 여권의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이한구 한나라당 의원)
.’

‘경제부총리제를 빨리 도입해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경제팀이 한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경제정책은 단기적인 현안에 매달리기보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여 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전주성)
.’

‘공적자금의 투명한 조달과 운용은 정부 정책의 신뢰도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전주성)
.’ ‘공적자금의 효율적 운용은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오문석)
.’

‘구조조정에는 어림잡아 1백조원의 공적자금이 동원되고 그 대부분이 회수되기 어려울 것이다(박원암)
.’ ‘공공부문의 구조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정부가 민간부문의 개혁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공적자금이라도 제대로 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전주성)
.’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적자금을 최소화해야 한다. 동시에 경제위기를 수습하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그리고 적기에 조성, 집행해야 한다. 이런 서로 모순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국민적 감시와 평가를 받아들이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김상조)
.’

‘공적자금은 국민의 돈이므로 그 조달과 운용을 행정부·국회·사법부가 감시·감독해야 한다(박원암)
.’ ‘특히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있는, 그래서 국민적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는 유사 공적자금(공공자금, 채권안정기금 등)
은 철저하게 통제되어야 한다(김상조)
.’

노동시장의 개혁과 노사정 관계의 재정립은 9명이나 지적했지만, 노사간에 방향성이 달랐다.

노동계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등으로 노사정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단병호)
’고 주장한다. 반면 사용자쪽에서는 ‘주 5일 근무제를 채택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박운서)
고’ 반박하고 있다.

‘투신사 구조조정을 통한 채권시장 조기 안정이 절실한 것은 한투·대투에 3조원의 공적자금을 더 투입했는 데도 자금이 투신권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불신 탓이다. 시장의 불신이 워낙 심해 어떻게 신뢰를 회복하느냐가 과제다(정문건)
.’

‘남북경협 활성화 지원을 대통령이 챙겨야 하는 것은 사안의 성격상 특정 부처의 관점과 고려만으로 결정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정운영)
.’ ‘정경분리의 원칙이 지켜져야겠지만 당분간 경제논리만으로 경협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지나치게 경제논리로 추진하다 보면 답보상태에 빠질 우려도 있다. 남북경협은 비경제적인 혜택이 적지 않으므로 실리적인 관점을 견지하되 이를 절대시해선 안 된다(김중웅)
.’

‘기업간의 과당 경쟁, 각 부처의 한건주의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당분간 대통령이 직접 챙길 필요가 있다(이경태)
.’ 지배구조 개혁을 통한 재벌개혁 추진은 8명이 지적했지만, 그 중 6명이나 2대 과제로 꼽았다. ‘재벌개혁, 특히 지배구조의 개선은 재벌 총수의 결단이나 정책당국의 명령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김상조)
.’

‘지배구조의 개혁은 사실상 현존하는 재벌(개인)
의 경영권 상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재벌들은 따라서 서로 단합해 저항할 것이다(오관치)
.’ ‘재벌들의 저항은 집권 후반으로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올 하반기를 넘기면 재벌개혁의 기회는 다시 오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단병호)
.’

‘재벌들의 이런 저항을 일개 부처의 장이 극복하기는 힘들다. 재벌개혁을 대통령이 관장해야 하는 이유이다(오관치)
.’

‘1인 총수 지배체제를 종식시키고 전문경영인에 의한 책임경영이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외이사제도의 실질적인 도입과 정착이 필요하다(김정태)
.’

공공부문 구조조정 촉진도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공무원사회의 부조리가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고, 이로 인해 국가사회의 전 부문에서 투명하고도 공정한 경쟁이 봉쇄되고 있기 때문이다(오관치)
.’

‘우리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공공부문의 구조조정 없이는 금융·기업 부문의 구조조정도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이제 기구·인력 감축식의 산술 게임을 하지 말고 조직의 내용을 바꾸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인센티브를 주어서까지(박원암)
.’

▶경제팀은 교체돼야 하나?

경제팀의 교체 내지 재정비는 불과 2명이 지적했다.

이들 두 명은 그러나 모두 경제팀 교체를 강조하고 싶은 두 가지 문제 중 하나로 꼽았다. ‘공적자금 조성, 2차 금융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경제팀 내부의 조율이 제대로 안 돼 경제정책의 신뢰성·투명성이 훼손됐으니 경제팀을 교체하거나 아니면 재정비해 경제 개혁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재다짐할 필요가 있다(김중웅)
’는 것이다.

‘대통령이 각료의 일을 대신하는 것은 효율적이 아니므로 훌륭한 경제 각료들을 골라 이들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정운영)
’도 방법일 수 있다. 대우자동차 등 대우 계열사 문제 조기 처리는 7명이 지적했지만 김수중 기아자동차 사장만이 2대 현안으로 지목했다. 그는 “영국 자동차산업의 성쇠(盛衰)
에 비추어 외국자본 유치에 비중을 두는 대우차 처리는 재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과 관련, 벤처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장흥순 터보테크 사장은 “획기적인 정책을 입안하려고 하기보다 일관성 있게 기존 정책을 밀고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발행·유통 제도 개선을 통한 증시 안정과 관련, “긴 안목으로 금융시장 정책을 입안하고 금융 구조조정을 투명하게 실시하는 것만이 심리적인 불안을 해소하고 정상적인 시장을 복원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이필재 기자] <jel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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