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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명숙 무죄 … 검찰의 무능과 무리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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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검찰은 할 말이 없게 됐다. 무능한 데다 무리수까지 뒀다는 비판 앞에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전직 국무총리를 뇌물수수에 이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두 차례나 법정에 세웠을 땐 뭔가 있으리라고 내심 믿었다. 1년6개월 만에 두 번의 무죄 선고를 보는 국민은 철저히 배신당한 느낌이다. ‘정치검찰’이란 냉소(冷笑)가 판치고, 검찰 신뢰는 끝 모르게 추락하게 됐다.

 어제 무죄가 난 한명숙 전 총리의 ‘9억원 사건’은 애당초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6·2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해 4월 검찰은 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한 전 총리의 금품수수설을 느닷없이 흘렸다.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서 9억여원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의 뇌물수수 혐의 사건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오기 바로 하루 전날이었다. 우리는 본란을 통해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무죄라는 결과만 보면 구체적 물증도 없이 사건을 떠벌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바람에 선거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받은 유권자가 있다면 검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무죄는 입에 의존한 수사, 근거가 약한 기소,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공소유지가 만들어 낸 검찰의 합작품이다. 무죄판단 이유는 두 사건에서 똑같았다. 재판부는 “한만호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곽씨 진술이 일관성, 합리성, 객관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구체적 물증도 없이 진술에 놀아났다는 얘기다. 돈과 관련된 사건은 은밀함의 특성상 입증하기 힘든 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허술한 수사가 자초한 망신이다.

 아직 상급심이 남아 있어 1심 판단이 뒤집힐 여지는 남아 있다. 국민은 검찰이 의도를 갖고 수사를 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검찰은 정치적 고려를 배제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일깨운다. 괜한 희생자만 만들어 사법적 괴롭힘을 가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검찰사에 남을 만한 치욕적인 부실수사의 결과에 검찰 수뇌부는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