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비싼 시간이네” 오후 외출 나간 영미씨, 스마트폰 이용해 집 절전모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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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스마트그리드 통합운영센터(TOC). 단지 내 모든 전력 사용·생산 정보가 집결되고, 각 가구에 실시간 요금 정보를 보내준다. [김형수 기자]

제주도 구좌읍 평대리의 조영미(45)씨는 요즘 태블릿PC에 깔린 애플리케이션으로 틈틈이 자신의 전기 사용정보를 확인한다. 현재 전기 사용량이 얼마인지, 어느 제품이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지를 따져보고 인근 다른 가구와도 비교한다. 이달 초 그의 집에는 스마트 냉장고와 세탁기·에어컨도 새로 들어왔다. 이 가전들이 지능형 전력망과 연결되면 조씨는 전기료가 비쌀 때 냉장고·세탁기의 가동을 최소화하고, 외부에서 냉난방 등을 조절해 전기 요금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집안 공터에는 태양광 발전기와 생산된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설비도 들어서 있다.

 조씨는 “휴대용 기기로 자주 정보를 접하게 되니 요금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불필요한 전기 사용도 줄었다”며 “앞으로는 직접 생산한 전기를 쓰거나 남는 전기를 되팔 수 있다니 전기료가 확실히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들 설비는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이 제공한 것이다. 구좌읍 일대 60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실증단지가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12월. 최근 끝난 1단계 사업에선 각 가정에 스마트 계량기·디스플레이(IHD)장치 등 인프라를 구축했다.

 현지 통합운영센터(TOC)에선 각 가구에 실시간 전기요금 정보를 보내고 각 가구의 전력 사용 정보를 취합한다. 한전 김용진 스마트그리드센터장은 “집결된 정보를 통해 정밀한 수요예측이 가능하고 사고나 위험 가능성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정전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된 수요예측의 오류와 보고 누락, 뒤늦은 대응 등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인 셈이다.

 2단계 사업의 핵심은 단지 내 가구에 현재의 획일적 요금 대신 전력 수급에 따라 달라지는 실시간 요금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달 중순에는 105가구를 대상으로 실시간 요금을 적용한 고지서가 첫 발송됐다. 첫 달엔 25가구가 기존 요금제 때보다 전기료를 덜 냈다. 25가구의 평균 전력 사용량은 300㎾h로 시범가구 전체 평균(231㎾h)보다 높다. 상대적으로 전기 사용량이 많아 요금이 많이 나오는 가구들이 가격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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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력 실증팀 이권철 사무부문장은 “실제 고지서가 도착하고 요금을 덜 낸 가구들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어떻게 해야 요금을 아낄 수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고 말했다.

 현행 주택용 요금체계는 기본적으로 쓰는 만큼 더 내는 구조다. 전력이 모자라는 한낮 피크 때 전기를 쓰든, 남아도는 한밤중에 쓰든 같은 양에는 같은 요금이 매겨진다. 요금을 아끼려면 무조건 덜 쓰는 방법밖에 없다. ‘석유 파동’이 잦았던 1970년대에 설계된 요금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수급에 따라 생산 원가가 달라지는 전기의 특성과는 잘 맞지 않는다. 현재 발전소들은 사용량이 적은 밤시간대에는 원자력·석탄 등 값싼 원료를 사용하는 발전기만 돌린다. 하지만 전기 사용량이 늘면 액화천연가스(LNG) 등 비싼 원료를 쓰는 발전기까지 돌려야 해 비용이 오른다. 수요를 적절히 분산하고 관리할 수만 있다면 발전소를 그만큼 덜 지어도 되고, 전기요금 인상 압박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실시간 요금제가 전기를 편리하게 이용하면서도 효율을 높일 것으로 기대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KT 고석범 스마트그린센터장은 “스마트그리드 환경에서는 무조건 덜 쓰기보다는 밤시간대 세탁기를 돌리는 등 똑똑하게 쓰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현재 제주도 스마트그리드 단지에서 실시되고 있는 주택용 실시간 요금은 매일 바뀌기는 하지만 오후 11시~오전9 시 요금이 상대적으로 싸고, 정오~오후1시와 오후1~5시에는 비싼 요금이 적용된다. 나머지 시간대는 중간 수준이다.

 앞으로 제주도 실증단지에서는 휴대전화 요금제처럼 소비자들이 자신의 형편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요금제가 도입될 예정이다. 예컨대 일정 용량까지는 현행 요금제대로 내고 초과분에 대해서만 실시간 요금을 내는 방식이 있다. 최소 전력만 쓰는 1인 가구 등에 적합한 체계다. 실제 일률적으로 실시간 요금제를 적용한 결과 전력사용량이 적은 가구의 경우 요금이 두 배 이상으로 뛰는 부작용도 발견됐다. 반대로 사용량이 많고 빠른 대응이 가능한 대규모 산업체에 맞는 15분 단위의 실시간 요금제도 시험된다. 전력 거래도 지금처럼 한전에서 팔고 소비자가 사는 일방향이 아닌 소비자도 직접 생산한 전기를 파는 양방향 거래가 시도된다.

 김창섭 경원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스마트그리드는 시장 내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수급 상황에 반응하며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형태”라며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고 정전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선 정보기술(IT)의 활용도를 높이고, 전력망을 고도화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글=조민근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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