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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황금바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42호 10면

팔순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 논에서 가을걷이가 한창입니다. 길가에 있는 논이라 할아버지가 논에서 일하실 때면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반갑게 인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곤 했습니다. 오늘은 마음이 바쁘신지 인사만 훌렁 받으시고는 벼 베기에 여념 없습니다. 일 년 농사를 거두시는 것이니 아무래도 온 마음이 가을걷이에 가 있습니다. 콤바인이 지나고 나면 기계가 미처 떨지 못해 남은 벼 이삭을 낫으로 베어 모읍니다. 한 톨의 나락이라도 남김 없이 거두시려는 마음입니다. 봄부터 온갖 정성을 쏟았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예전에 나눴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농사 중에 나락 농사가 제일 박해!” “나락 농사는 돈 보고 하는 게 아니야.” “그냥 하는 거지.” 할아버지는 나락 농사를 그냥 하신다고 하지만 그 곁을 지나치는 우리에겐 생명의 빛이 넘쳐나는 감동의 땅입니다. 할아버지의 애씀은 나락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 곁을 지나치는 우리의 마음도 키웁니다. 부디 씨알 굵은 나락이 할아버지 곳간에 가득 차길 바랍니다. 가을은 이래저래 배부른 계절입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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