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최악 패배’ 이틀 뒤 꽃다발 등장한 한나라 의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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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정치부문 기자

28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는 꽃다발 8개가 등장했다. 추재엽 서울 양천구청장 등 10·26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한 기초단체장 8명에게 주려고 당 사무처가 마련한 것이다. 홍준표 대표에게서 차례로 꽃다발을 받은 이들의 입에선 “홍 대표님과 당원 동지들 덕분이다. 은혜를 잊지 않겠다”(이종대 충주시장)는 말도 나왔다. 이런 장면을 지켜보던 몇몇 인사들은 “서울시장 보선에서 참패한 마당에 웬 꽃다발이냐”, “귀순용사 환영식도 아니고 이게 무슨 쇼냐”, “이번 선거에서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니라고 한 홍 대표가 서울에선 졌지만 지방에선 이겼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이런 이상한 이벤트를 준비한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꽃다발 수여에 이어 황우여 원내대표가 나섰다. 황 원내대표는 서울시장 선거패배와 관련해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시대에 대한 근본적 고찰이 필요하다”는 말만 했다. 30여 분간 공개된 의총에서 지도부나 의원들 누구의 입에서도 “책임을 느낀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1997년 창당 이래 서울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정당치곤 너무 태연했다.

 회의가 비공개로 바뀌자 홍 대표가 비로소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수도권이 침몰하고 있는데 대한 처방을 갖고 당을 운영하겠다”며 “당명도 바꾸자고 하면 바꾸겠다”고 말했다. “다음주부터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타운미팅에 나서겠다”며 “당풍을 쇄신해 젊은이들이 무엇을 바라고 원하는지 대혁신해 나갔으면 한다”고 했다. 이어 유정현 의원은 “ 공천개혁을 통해 인적쇄신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정태근 의원은 최근 어청수 청와대 경호처장 임명을 거론하며 “ 오만한 소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청와대는 앞으로 인사(人事) 하려면 당에 물어보고 하라”고 큰소리쳤다.

 홍 대표 면전에서는 벙어리였다가 대표가 없는 의총장 밖에서 비판이 터져나왔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기자들과 만나 “당을 해체해 재구성한다는 각오로 지도부가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버티기에 나선 홍준표 대표를 겨냥해 “너무 후지지 않나. 개념이 없다. 자발적 희생이 안 된다면 타의에 의한 퇴출이 될 것”이란 말도 했다. 소장파의 대표격인 정두언 의원도 “패배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누가 있냐”고 했다.

 선거에 졌다고 해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사퇴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책임을 지는 방식엔 여러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도부와 의원들의 태도는 꼬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누구도 책임을 느끼는 이들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7.2%포인트 차이로 참패한 데다 서울의 국회의원 선거구 48개 중 41개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이 선거 후 처음 연 의총을 지켜본 사무처의 젊은 관계자는 “한나라당엔 도대체 감동이 없다”고 말했다.

김경진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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