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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해피 톡톡] 소녀시대 윤아야 고맙다, 우릴 행복하게 해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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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행복동행 에디터
가천대 세살마을연구원
연구교수

엄마의 자존심이란 게 도대체 뭔지…. 지난 16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위아자 나눔장터에서 제가 작은 ‘사고’를 쳤습니다. 명사 기증품 경매 시간에 소녀시대 윤아가 직접 사인한 화보집을 자그마치 15만원에 산 겁니다. 지난 호 ‘행복동행’ 표지에도 사진이 실렸던 그 분홍색 화보집 말입니다. DVD가 6장이나 들어 있긴 하지만, 사실 인터넷 쇼핑몰에서 6만원 안팎이면 구입할 수 있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초등 5학년생 큰아들이 위아자 나눔장터를 며칠 전부터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윤아를 좋아하는 아이는 그 화보집을 사고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모아둔 용돈이 전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에게 제가 ‘거래’를 제안했습니다. 앞으로 편식을 안하겠다고 약속하면 최대 10만원까지 지원해주겠노라고요. 요즘 사춘기가 시작됐는지 또래하고만 어울리려는 아이에게 좀 더 다가서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아이는 물론 “콜!”이었습니다. 대신 “이 경매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위한 거니까 특별히 참가하게 해주는 거야”라는 말을 장터날까지 아이에게 세뇌시키듯 반복했지요.

드디어 장터날, 화보집 경매가 시작됐습니다. 처음엔 제 아들 또래의 다른 아이들도 경매에 참여했지만 호가가 5만원이 넘자 제 아이와 어떤 아저씨, 두 사람만 남았습니다. 호가를 주고 받은 결과 그 아저씨가 먼저 부른 10만원에 낙찰되는 듯 했습니다. 그때 아이가 번쩍 손을 들었습니다. “10만5000원!” 다음주에 받을 용돈 5000원을 보탠 겁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 “12만원”을 불렀습니다. 잠깐 침묵이 흐르는 사이. 아이가 영화 ‘슈렉’에 나오는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커다란 눈을 불쌍하게 뜨고 절 힐끗 쳐다보는 순간, 이 엄마가 나서고야 말았습니다. “13만원!” 그 아저씨는 다시 “14만원”을 불렀고, 전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15만원”을 외쳤습니다. 결국 전 ‘아차’하는 쓰린 마음을 안고,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그 화보집을 받아 왔습니다.

어쨌든 처음 참가해본 위아자 나눔장터의 경매 현장은 흥미로왔습니다. 그날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자전거는 1200만원에 낙찰됐습니다. 지난 7년간 진행된 위아자 장터 경매 사상 최고가라고 합니다. 또 수영의 박태환 선수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시상식에서 입었던 트레이닝복과 가수 이효리가 뮤직비디오 촬영 때 입었던 호피 무늬 가운은 각각 40만원, 25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습니다. 스타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작은 물품 하나 하나가 얼마나 값지게 쓰일 수 있는지 알게된 자리였습니다.

 위아자 나눔장터는 서울뿐 아니라 부산·대전·전주에서도 열려 모두 36만여명의 시민이 다녀갔습니다. 명사 기증품 경매 수익과 함께, 장터에 참여한 개인과 단체·기업들이 수익금으로 기부한 금액은 약 1억4300만원에 이릅니다. 이 돈은 위스타트 운동본부를 통해 저소득층의 아이들을 위해 잘 쓰일 겁니다. 거기에 저도 일조를 했다고 생각하니 쓰렸던 마음이 풀립니다. 후배들이 “그 화보집은 나도 탐났던 것”이라고 말해주니 기분이 좀더 좋아집니다. 호호호.

그 화보집은 오늘도 아이의 책상 한 가운데 세워져 있습니다. 나눔교육과 경제교육의 효과 측면에서는 계산을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아이에게도, 저에게도,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윤아야, 고맙다.

김정수 행복동행 에디터, 가천대 세살마을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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