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원중 ‘언어문화개선’ 프로젝트 시행

중앙일보

입력

12일 상원중 학생들이 등굣길에 바른말 쓰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X하네, X신아’의 뜻은 무엇일까요?”

 10일 서울시 노원구 상원중 2학년 2반 교실에서 국어수업이 한창이다. “지X은 간질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고 X신은 신체가 온전하지 못한 기형이거나 그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를 뜻하는 말이에요.” 이 수업은 친구들끼리 욕설을 하는 동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뜻을 풀이하는 어원풀이 시간이다. 욕을 하는 영상을 보고 멋쩍은 웃음을 짓던 학생들의 표정이 뜻풀이를 시작하자마자 굳어졌다. 학생들은 “어원을 알고 나니 충격적이고 무섭다”고 입을 모았다. 이동원군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욕이 상대방의 가족을 비난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라고 말했다.

 어원풀이가 끝나자 교사와 학생들 간에 질의응답이 오갔다. “우리는 욕을 할 때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하나요?” 교사의 질문에 학생들은 일제히 “아니오”라고 답했다. “욕은 말을 충동적으로 내뱉는 행동이기 때문에 자기조절력을 잃게 만든답니다.” 교사는 화면에 나온 욕설들을 하나씩 칠판에 적고 어떤 단어로 순화할 수 있는지 학생들과 토론하며 수업을 진행했다. ‘짜증 나’라는 말을 ‘기분이 좀 안 좋아’처럼 바꿔 표현하는 식이다. 바뀐 표현에 대해 아이들은 “부드럽다” “산뜻하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반 학생들의 책상에는 자기관리 플래너가 하나씩 올려져 있다. 학생들의 학업계획과 그날그날 내뱉은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을 기록해두는 노트다. 상원중은 이번 학기부터 전교생을 대상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이소희양은 “담임 선생님이 매일 관리를 해주시기 때문에 잘못된 언어습관을 더 빨리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일회성 캠페인 아닌 교과연계 수업으로도 진행

 상원중은 지난해 말부터 올바른 언어사용을 학교 특색사업으로 정하고 학생들의 언어문화 개선 노력을 펼치고 있다. 올해부턴 교과학습 시간에 올바른 언어사용을 위한 교육도 함께하고 있다. 수업 방식은 교과별로 다른데, 국어시간에는 욕설의 의미나 인터넷 통신언어를 표준어로 바꿔보고 도덕시간에는 감사카드와 칭찬카드를 써보기도 한다. 지난 5월에는 욕하지 않기 스티커 표어와 UCC 제작대회를 열기도 했다. 활동 우수학생을 시상하고 수행평가에도 반영한다. 아나운서와 같은 외부강사들을 초청해 특강을 열기도 한다.
 
 김성인 교장은 “말이 거칠면 행동도 거칠어진다”며 “교사와 학생이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이 사업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예진양은 “프로젝트가 시작된 후부터 욕설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며 “뜻을 알고부터는 다른 친구들도 욕설 사용을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스트레스 분출 창구 마련해줘야

 최근 청소년의 욕설 사용이 증가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생 언어문화 개선 프로그램을 만들고 20개의 선도학교를 지정해 시범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욕설 사용을 줄이기 위해선 보다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박인기 교수는 “청소년들의 욕설 사용은 근본적으로 가정과학교에서 아이들의 인성교육과 올바른 언어지도에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규범적으로 나쁘니 무조건 쓰지 말라는 식의 접근은 안 된다”며 “학생들이 문화적인 방법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다양한 창구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음누리클리닉 정찬호 원장도 “욕설은 성적지상주의의 경쟁 속에서 성장해온 청소년들이 분을 이기지 못해 내뱉는 충동적 언어”라며 청소년들의 욕설을 단순히 학생들의 비행으로 보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이어 “학업 이외에 학교에서의 예체능 활동과 가정 체험학습 시간을 늘려 심리적 불안요소를 없애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joongang.co.kr 사진="최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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