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은 엄연한 현실, 기대수익률 낮춰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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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호 20면

전반적으로 시장참여자들이 유럽과 관련된 최악의 국면이 지나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전 세계 대부분의 주식시장이 저점을 찍은 후 반등했고, 자국 내 경제추이와 기업실적, 금리인하, 성장동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스템 위기 걱정을 조금씩 덜어내는 형국이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오늘(23일)은 유럽 정상들이 모여서 해법을 의논하는 날이다. 많은 사람들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그리스 부채 해법, 은행의 자본 확충,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증액과 레버리지(차입), 그리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신용등급까지 연쇄적으로 얽혀 있는 난맥상을 단칼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오늘 어떤 방향의 해법이 제시되고 11월 3, 4일 프랑스 칸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나름의 합의가 나온다 할지라도 현 수준에서 시장을 강하게 만족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과도한 비관에 대한 경계만큼이나 낙관도 경계해야 한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표현했듯이 합의는 밀리미터(㎜)씩 전진하고 있는데 주식시장 참여자들은 늘 킬로미터(㎞)씩 해결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현 난맥상의 본질적인 문제가 가계와 정부의 과잉부채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 중 첫 번째는 고통스럽지만 짧은 기간 내 과감히 부채를 축소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세간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천천히 오랜 기간 부채의 규모를 줄이면서 성장산업을 육성하는 방편이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첫 번째 시도는 심각한 경기침체 국면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에서 선진국 정치권이나 경제주체들이 받아들이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현재의 유일한 대안으로 두 번째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결국 시사점은 세계경제의 3대 축(미국·유럽·중국) 가운데 양대 축인 미국·유럽의 저성장을 당분간 인정하고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한 축인 중국이 워낙 고성장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성장률의 정점이 서서히 10%대에서 8% 내지 9%대로 둔화되고 있는 시점과 맞물리고 있다. 이 점 때문에 시장 참여자들은 찬바람이 불어오는 2011년 하반기부터 2012년에 걸쳐서 나타날 저성장 국면을 받아들이고, 기대수익률을 낮춰 잡는 적응기간을 불가피하게 거치게 될 것이다.

문제는 항상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저성장 국면이라는 ‘타령’(?) 속에서도 중산층의 과잉 소비는 여전하고, ‘설마 나한테까지 영향을 미치겠어?’라는 심리가 군중 속에 똬리를 강하게 틀게 된다. 더불어 현재까지 학습되었던 고성장에 대한 기대치를 누르려고 할 때마다 말과는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든다. 시장참여자들의 기대수익률 또한 이런 시행착오의 과정을 몸으로 겪고 나서야 낮아지게 된다. 평균적으로 주식시장의 큰 충격이 나타난 이후 6~9개월 이후에 소비자들의 체감행동이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저성장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본격적인 인식은 올 연말 이후에야 나타날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 증시는 1900선을 눈앞에 뒀다. 지난해 10월 21일 코스피지수가 1874였다. 1년이 지나 엄청난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이 지수대 회복이 생각보다 쉽진 않다. 당시 시장을 끌어올렸던 미국의 2차 양적완화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또한 지난해 9월 이후 3.6%를 넘어섰던 물가상승률과 1년물 국채 수익률 간의 역전이 나타났던 시기도 딱 1년이 지나고 있다. 쉽게 말해서 현금성 자산의 마이너스 수익률이 12개월 이상 진행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참여자들의 속내에 있는 기대수익률은 아직도 높은 수준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여겨진다. 저성장에 대한 인정과 함께 이 괴리가 좁혀지는 상황이 나타날 때에야 의미 있는 주식시장의 반등을 논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고대 고르디안이란 도시에 있던 매듭(Gordian Knot)의 해법을 푸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전설이 있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는 단칼에 이 매듭을 자르고 오리엔털 문명과 서구 문명을 아우르는 정복자가 되었다. 독일과 프랑스를 위시한 G20의 지도자들이 이런 해법을 내놓길 기대하긴 어렵다. ‘G 제로(Zero)’라고 조롱 받는 상황이다. 무수히 얽힌 유럽의 문제를 이렇게 단칼에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은 녹록하지 않고 주식시장은 냉정하다. 정책적인 합의에 대한 앞선 기대감보다는 확인의 과정을 거치면서 기대치를 미리 낮춰놓는 대응이 나을 듯하다.

물론 구조적인 성장성에 대한 본인 스스로의 믿음이 있는 종목들이라면 장기적 안목의 투자를 일부 해도 좋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볼 때 기대치가 높아질 때는 좀 후퇴하고, 공포심리가 시장을 지배할 때는 1997년부터 쌓인 기업들의 위기돌파 인자를 믿고 우량주와 구조적 성장주에 좀 더 가까이 갈 필요가 있다. 이런 대처만이 다가올 겨울맞이 해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서재형(47) 2004~2008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주식운용본부장을 지냈다. ‘디스커버리’ ‘3억 만들기’ 펀드 등을 맡았다. 지난해 말 자문사를 설립해 한 달도 안 돼 1조원이 넘는 돈을 모았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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