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총 맞는 순간, 못 찍었나 감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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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페 데스마제스
AFP 사진기자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 전 리비아 국가지도자의 마지막 순간은 20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 순간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은 전 세계 신문의 1면을 장식했고, 1분30초 분량의 동영상은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아라비야와 알자지라 화면을 시작으로 수많은 방송에서 방영됐다. 그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카다피의 최후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지만 이 역시 숨을 거두는 장면을 포착하지는 못했다. 독재자의 옷은 피로 범벅이 됐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리비아 국민은 그의 멱살을 잡고 발길질을 하며 맺힌 한을 풀었다.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는 이리저리 짐짝처럼 끌려다녔다.

20일 시민군에게 끌려가고 있는 카다피. 그는 이 직후 총에 맞아 숨졌다. 카다피는 모발이식을 한 상태였다. [AP=연합뉴스]

 발 빠른 포착과 신속한 전파가 가능했던 것은 스마트폰 덕분이다. 한 시민군이 그 혼잡한 상황에서도 블랙베리폰을 꺼내들어 카다피의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카다피가 떠난 뒤 바로 그 현장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 휴대전화에 촬영된 영상을 돌려 보는 모습을 포착한 AFP 통신의 사진기자 필리페 데스마제스(Philippe Desmazes)는 재빠르게 그 무리에 끼어들었다. 데스마제스는 휴대전화 화면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댔다. 하지만 역광이라 선명한 모습을 담을 수 없었다. 그러자 시민군 병사들이 몸을 밀착해 그늘을 만들어준 덕분에 무사히 촬영할 수 있었다. 데스마제스는 “(본사에 송고한 화면이) 잠시 뒤 아랍 위성 채널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도 카다피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카다피를 체포했다는 소식만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NTC) 관리의 말을 통해 전해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NTC 대변인이 카다피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당시 시르테 서쪽에서 총성을 듣고 무작정 출발한 그는 "시민군에게 안내를 부탁해 전투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그 소리가 총성보다는 축포처럼 들렸다”고 그 순간을 회고했다.

민경원 기자

◆블랙베리폰=캐나다 림(RIM)에서 개발한 원조 스마트폰. e-메일 푸시 기능으로 실시간 메일 확인이 가능해 비즈니스맨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애용해 ‘오바마폰’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외에도 인터넷과 개인휴대정보단말기(PDA) 기능을 제공하나 국내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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