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시장'을 키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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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 전용관을 운영하는 동숭시네마테크 영상팀은 최근 실의에 빠졌다. 자체적으로 수입해 개봉한 첫 작품 〈아름다운 사람들〉이 크게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칸영화제 출품작이라 웬만큼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서울 관객은 고작 1천명. 긴가민가했으나 영화계에 떠도는 말을 절감했다.

"예술영화 시장은 죽었다" . 앞으로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같은 작품들이 대기하고 있으나 벌써부터 고민이 태산이다. 고육책으로 지금보다 좌석 수가 절반인 1백40석짜리 소극장을 8월경 개관할 생각이다. 예술영화는 포기할 수 없는 만큼 적자 폭이라도 줄여보자는 생각에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예술영화 전용관을 시도했다는 평을 받는 〈아름다운 시절〉의 이광모 감독(39)은 "한국에서 예술영화를 보는 관객은 4천명" 이라는 경험칙을 갖게 됐다.

실제로 백두대간이 지난 2월 개봉한 일본영화 〈그림속의 나의 마을〉은 3천명이 들었다. 베를린영화제 수상작인데다 난해한 영화도 아니어서 기대했으나 오산이었다.

98년 영화사 율가필름이 고전영화 전용관으로 서울 강남에 개관한 극장 '오즈' 는 최근 인터넷 업체로 넘어갔다.

〈이유없는 반항〉〈이지라이더〉등 미국 고전영화를 주로 상영했으나 적자 누적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당초 1년짜리 회원이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소문났으나 실제로는 겨우 2천명 정도였다고 한다.

미국.일본의 예를 들 것도 없이 상업영화와 예술영화가 균형을 잡아야 영화산업이 안정적으로 발달할 수 있다.

시리즈 첫 회에서 충무로의 상업영화 시장이 불안하다고 지적했지만 이른바 예술영화 시장은 훨씬 이전부터 심각한 상태다.

95년 무렵만 해도 난해하기로 이름난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나 〈노스탤지어〉를 보는 관객이 2, 3만명이 될 정도로 전성기였다.

그러나 2, 3년도 못 넘기고 찬바람이 불었다. 그 결과 수입업자들은 예술영화 냄새가 나는 작품은 꺼리게됐고 설사 수입하더라도 "예술영화가 아니다" 거나 심지어는 "영화제에서 수상했다는 말을 쓰지 말아달라" 고 기자들에게 부탁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고 있다.

반면 영화와 관련된 공부나 일을 하는 인력은 급증하고 있다. 95년 이후 영상원을 포함해 전국에서 영상관련학과를 신설한 대학은 약 20곳이나 된다.

소규모 영화 클럽 등에서 공부하거나 단편 영화를 제작하는 이들도 많다. 인터넷에서 영화관련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이트는 70개를 넘고 영상관련 주간지도 호황이다. 그런데도 예술영화는 '죽을 쑤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모 대학 강사는 "한국의 영화 문화가 얼마나 기형적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고전과 명작 소설을 다독(多讀)하는 것이 소설 작법의 기초인 것 처럼 영화 공부의 출발은 좋은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영화에 관련된 정보를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는 행위를 영화 공부인 양 착각하고 있다" 고 꼬집었다.

제작 쪽에서도 독립(예술)영화는 설 곳이 없다. 몇년 전만해도 충무로에서는 '저예산 영화' 의 제작이 활기를 띠었었다.

임순례 감독의 〈세친구〉나 〈바리케이드〉등은 스타 배우를 쓰지 않아 제작비를 낮추는 한편 사회비판적인 주제를 다뤄 이전 영화와는 차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제 충무로에서 저예산영화를 입에 올리는 이는 아무도 없다. 스타를 쓰지 않는 영화에 관객은 없다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상업영화도, 예술영화도 아닌 어정쩡한 영화가 태어나게 된다.

지난 4월 개봉한 변혁 감독의 〈인터뷰〉가 전형적인 예. 〈인터뷰〉는 애초엔 다큐멘터리와 허구의 경계를 묻는 등 영화의 본질을 다루려고 했다. 하지만 스타가 없으면 투자를 받기가 힘들다는 걸 알게 됐고 결국 심은하와 이정재를 캐스팅했다.

서울 관객 17만. 제작사는 제작사대로 불만이었고 감독은 평단으로부터 '스타를 쓰지않고 처음 생각대로 소박하게 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지적을 받았다.

얼마전 내한했던 〈총알발레〉〈쌍생아〉의 감독 츠카모토 신야는 "일본에서 비상업적인 영화를 만드는 건 너무나 힘들다. 그런데도 그럭저럭 만들게 되는 게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고 말했다.

평론가 야마네 사다오는 "최근 일본 영화를 부흥시킨 젊은 감독들은 대부분 츠카모토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 고 말했다.

일본의 독립영화 감독들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그럭저럭' 만들어가는 것은 개인적인 자질이나 열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 영화산업이 가진 시스템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젊은 감독들은 거의 무보수로 일하는 스태프들과 함께, 우리 돈으로 1, 2억을 넘지 않는 선에서 영화를 찍는다.

그 다음엔 이들 영화를 틀어주는 소극장에서 1, 2주를 건 다음 비디오.TV판권을 팔아 제작비를 회수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들고 싶은 영화를 투자자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만들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개성있는 영화들이 생산돼 해외에서 투자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한다.

당분간 한국에는 영화학도와 예비 영화 감독들이 넘쳐날 것이다. 하지만 충무로의 상업영화 체계만으로는 이들을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다. 설사 수용한다하더라도 의욕적인 젊은 감독들의 기만 꺾고 자기 빛깔이 없는 어정쩡한 영화만 만들어 낼 공산이 크다.

결국 독립(예술)영화의 제작 현장과 극장 등 유통 체계가 한 묶음이 된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한국영화는 질적 비약을 겪지 못한채 '저공 비행' 을 계속 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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