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관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선조들은 오동잎 지는 소리로 가을을 알았다. 오동잎이 가장 먼저 지기 때문이다. 퇴계 이황의 ‘서당 김응림의 가을 감회(書堂次金應霖秋懷)’라는 시에 “오동나무에 가을이 들었네(秋入梧桐)”라는 구절이 있다. 이황은 이 구절 뒤에 『회남자(淮南子)』에 나온다면서 “오동잎 하나가 떨어지면, 가을인 것을 천하가 안다(梧桐一葉落, 則天下知秋)”는 구절을 덧붙였다. 사마광(司馬光)의 ‘오동(梧桐)’이란 시에도 “처음 오동잎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구월 가을이 온 것을 안다(初聞一葉落, 知是九秋來)”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구월은 물론 음력이다.

 오동잎이 지고 나면 단풍이 든다. 관풍(觀楓), 즉 단풍놀이가 시작된다. 조선 중기 최고의 시인으로 꼽혔지만 평생 야인으로 마쳤던 석주(石洲) 권필(權?·1569~1612)의 ‘송도 가는 의상인을 보내며(送義上人之松都二首)’라는 시에 “고사에서 경서 뒤적이는데 가을이 또 다하니/만산에 붉은 단풍잎 절로 저녁노을이구나(古寺?經秋又盡/萬山紅葉自黃昏)”라는 구절이 있다. 모든 산에 단풍이 저녁노을처럼 붉게 물들었다는 절창이다. 당나라의 한유(韓愈)도 ‘광선상인빈견과(廣宣上人頻見過)’에 “하늘 차가운 고사에 찾아오는 이 없는데/단풍잎은 창 앞에 얼마나 쌓였는지(天寒古寺遊人少/紅葉窓前有幾堆)”라고 고사의 가을을 노래했다. 조선 후기 이규경은 ‘사시(四時)의 청취(淸趣)’에서 “(가을) 오후에는 백접리(白接?) 쓰고 은사삼(隱士衫) 입고 단풍잎 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문득 시구 하나를 얻어 단풍잎 위에 쓴다”고 말했다. 백접리는 진(晉)나라 때 애주가 산간(山簡)이 썼다는 두건인데,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양양가(襄陽歌)’에서 그를 두고 “석양은 현산 서쪽으로 넘어가려 하는데/백접리 거꾸로 쓰고 꽃 아래서 헤맨다(落日欲沒峴山西/倒著接?花下迷)”라고 읊었다. 은사삼은 도가(道家)의 은자(隱者) 성방(成芳)이 맥림산(麥林山)에 은거할 때 입었다는 적삼이다.

 단풍 보러 산에 가는 것을 유산(遊山), 또는 등고(登高)라고 한다. 『동국여지승람』 『한성부(漢城府)』 남산 팔영(八詠)조에 ‘구월등고(九月登高)’란 말이 있다. 구월 구일 산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며 재액을 쫓는 것이다. 주말마다 단풍객들로 설악산 등지가 몸살을 앓는다는 소식이다. 홍석모(洪錫謨·1781~1850)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남한산·북한산·도봉산·수락산 등도 단풍 구경에 좋다고 쓰고 있다.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