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온라인과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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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치의 열광적인 팬들에겐 때 이른 6월의 무더위 속에서도 조금만 참는다면 다소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의 99년작 〈Straight Story〉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가당치 않은(?) 반가운 소식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린치가 인터넷을 통해 연재만화 cartoon를 만들 것이며, 그 첫 작품이 아마도 6월경에 선보일 수 있으리라는 올해 3월에 발표한 그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필경 이번달엔 그의 작품을 극장이 아닌 인터넷 공간에서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배급업자가 영화를 수입하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비디오가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릴 필요도 없이(물론 ‘유료pay-per-view’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웹상에 뜨는 그 '즉시' 린치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온 것이다 .

데이비드 린치는 올해 3월 소프트웨어 회사인 매크로미디어(Macromedia)가 소유한 오락 웹사이트 쇼크웨이브 닷컴(Shockwave.com)의 도움을 받아 연재 만화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었다. 일종의 시리즈가 될 것으로 보이는 이 연재만화의 제목은 〈Dumbland〉이며(이 심상치 않은 제목!) 쇼크웨이브 플래쉬 소프트웨어(Shockwave's Flash software)를 사용한 애니메이션이 될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이 연재만화가 어떠한 장르이며 어떤 내용인지는 베일에 싸여있다.

극영화에서 보여준 린치의 대가다운 풍모를 생각한다면 이 작업은 비록 연재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미디어와 영화의 잡종교배라는 상징적 사건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 영화와 다른 매체와의 경쟁 혹은 협력 관계는 늘 논쟁적이었다. 70년대 영화와 텔레비전이 그랬고, 80년대에는 영화와 비디오, 케이블 TV, 위성방송이, 그리고 90년대 말부터는 영화와 인터넷의 모호한 경합 혹은 협력 관계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역사를 되돌아 본다면 새로운 미디어의 발전은 영화를 도살하기는커녕 차라리 영화 라이브러리의 중요성을 더 부각시켰다(새로운 디지털 기술에 기초한 DVD와 DVD타이틀로서의 영화의 중요성을 생각해보자). 영화는 늘 새로운 미디어 산업의 기본적인 토대였으며, 미디어는 영화의 새로운 출구시장을 넓히는데 일조 했었다. 실로 어디에나 영화가 존재했고, 이제 빛의 속도로 영화가 안방으로 찾아올 날만 남았다.

영화와 인터넷의 새로운 관계 설정은 의외로 작년 〈블레어 윗치〉라는 저예산 영화가 거둔 엄청난 흥행성적으로 인해 촉발되었다. 인터넷을 통한 영화 홍보는 〈블레어 위치〉에 대한 대중적 호기심과 흥미를 자아냈고, 이것이 실제 영화 흥행의 성공을 가져왔다.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영화를 홍보하는 것은 전통적인 미디어(텔레비전, 신문, 잡지, 팜플렛 등)를 통한 홍보 보다 비용이 저렴하고(가격 경쟁력), 단발적이지 않으며(지속성), 일방적이지 않다(쌍방향성)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블레어 윗치〉가 인터넷에 대해 새롭게 구상한 첫 세대의 영화가 된 셈이었다. 하지만 이제 영화와 인터넷의 공모관계는 단지 사전 홍보(입구)와 극장 개봉의 성공(출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상에서의 영화라는 새로운 성격의 영화를 탄생시킬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저 예산 독립 영화는 자신의 영화들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서 영화 제작 전반을 웹을 통해 실현할 수 있다. 영화 감독은 시나리오를 들고 어렵게 제작자를 찾아 나설 필요 없이 먼저 웹사이트를 만들고, 그 공간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사전에 공개하고, 영화를 위한 재정을 온라인을 통해 공모하고, 온라인 상에서 영화 배우를 구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중간자(agent)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용 절감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영화 제작 과정에서부터 관객과의 교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게다가 온라인상에서 메이저나 인디는, 예컨대 〈조선일보〉와 〈딴지일보〉처럼 웹상의 평등한 영토를 점유하고 있다. 실로 예술의 민주화가 도래하는 것일까?

더욱 반가운 것은 이러한 인디영화들을 위한 영화제 또한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미국에서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벌어지기 나흘 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최초의 인터넷 영화제인 '야후 인터넷 온라인 영화제(Yahoo! Internet Life Online Film Festival)'가 있었다. 현재 한국에서도 성격은 이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온라인 영화제가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인디영화에게 온라인은 적소(適所)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적소(賊巢)일 수 있다. 영화의 긍정적인 가치는 마치 삶의 참된 본성처럼 예술적인 감각을 보존하고 지속시키는 것에 있다. 하지만 인터넷 온라인이 갖고 있는 즉시성, 무책임한 쌍방향성은 다이제스트적인 영화 소비와 중독적인 반복 소비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과연 인터넷 온라인 위에서 '푸른 꽃'이 피어날 수 있을 것인가? 린치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그의 작품이 더더욱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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