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맨/ The Running Man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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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아놀드슈왈츠제네거가 헐리우드의 대스타로 완전한 자리매김을 하기전, 그러니까 그의 영화인생에서 과도기에 해당되는 시기의 작품이다.

근육질의 몸매로 스크린을 어슬렁거리면서(단지 그것뿐이었던) 칼을 들고 국적불명, 시대불명의 영웅으로 활약하던 시기를 거쳤고 선글라스와 총으로 중무장한 터미네이터의 모습으로 확실한 상품성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 시기 이후에 그가 변변한 대사처리 하나도 버거운 B급 배우로 전락할지, 도약의 발판이 될지를 가늠하는 기로에 여러번 서게 되는데 이 영화〈러닝맨〉도 같은 맥락에 있다.

액션이 주가 되고, 특히 상품성이 강한 특정배우에 모든 요소들이 집중되는 영화일 경우 주변장치는 그저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그 전형적인 예를 보여준다.

화면속에서 슈왈츠제네거는 그저 뛰고, 파괴하고, 윽박지르면서 자신에게 모든 것이 집중된 상황을 효과적으로 만회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데올로기도 없고, 그렇다고해서 진정 화끈한 액션도 없는 이 작품에서 관객들이 유일하게 몰두할 수 있는 한가지 아이템은 이처럼 애처롭게 날뛰는 한 배우밖에 없음인 것이다.

대개 이런류의 영화들에서 음악이란 주변에 깔린 영화적 장치들을 효율적으로 제어함과 동시에 주위를 환기(좋은 말로)시키기 위해 팝음악을 남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운드트랙 앨범을 들으면서, 또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의외라고 생각되는 특징은 전곡이 연주곡으로 구성된 순수한 스코어 위주의 음악구성으로 영화의 요소요소마다 날카로운 해롤드휄터마이어의 전자음이 개입한다.

해롤드휄터마이어는 80년대를 풍미했던 조르지오모로더 사단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중요한 인물로써, 국내에서도 이미〈탑건〉이나〈시프하트〉등의 음악으로 많이 알려져 있었다.

조르지오모로더가 유로댄스의 영향을 받은 단순명료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면, 해롤드휄터마이어의 음악은 보다 미국적이며 개방적인 사고로 접근한다.

조르지오모로더가 리듬머신을 이용한 반복악절에 능한 반면, 해롤드휄터마이어의 스코어는 매우 직선적이며 날카로운 음색을 들려주는데 이 영화의 스코어는 그 특징을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또한 직선적인 사운드 이면에 영화〈지옥의 묵시록〉의 비행폭격 장면에서 들려지던 유명한 곡〈발퀴레〉를 전자음악으로 편곡하는 유머를 접할 수 있는 이색적인 앨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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