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벤처인의 성공스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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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성공한 벤처인들의 공통점은 굳은 의지로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 특히 어려운 환경을 딛고 정상에 올라선 이들의 성공담은 더욱 빛난다.

기회의 땅 테헤란밸리에서 코리안드림을 이룬 성공 벤처인들 중에는 색다른 경력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역경을 딛고 한국을 대표할만한 벤처인으로 거듭나 수많은 벤처 지망생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5명의 성공스토리를 알아본다.

드림위즈의 정내권(33)부사장은 국내 최고의 프로그래머로 꼽힌다.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인 □글 개발의 핵심 주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학교 문턱에는 가본 적도 없다. 갓난아기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하반신을 전혀 못쓰는 1급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집안에서 해결했습니다. 취학도 포기하고 혼자 책을 읽으며 공부했지요" 그의 삶에 결정적 전기가 된 것은 1984년 집에서 우연히 접한 컴퓨터잡지. 뛰어난 두뇌를 가진 그는 베이직.C.C++ 등의 컴퓨터 언어를 혼자 깨우쳤다.

그러면서 컴퓨터통신에 빠져 당시 한글문화원을 중심으로 모였던 고(故)공병우 박사와 박흥호(나모인터랙티브 사장).이찬진(드림위즈 사장)씨 등과 알게 된다.

90년 이들이 운영하던 '한글과 컴퓨터' 사에 합류, 국내 응용프로그램의 상징인 한글프로그램 개발의 주역이 됐다.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소프트웨어는 '한글1. 5' '한글2. 0' '한글 3.0' '한글96' '한글97' 등. 요즘은 차기 버전인 '워디안' 개발을 위해 매일같이 밤샘 작업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같은 鄭부사장의 능력을 인정, 지난 1일 '정보문화기술상' 을 수여했다.

드림위즈 김정수 과장은 "다른 프로그래머가 며칠 밤을 새워도 해결 못하는 일도 그의 손에 들어가면 하루만에 해결된다" 고 말했다.

鄭부사장은 "워디안 개발이 끝나면 정보가전 분야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주력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의료 포털 엠디하우스(http://www.mdhouse.com)를 설립한 인하대 이비인후과 정동학(44)교수는 공원 출신이다.

성동공고 졸업 후 포항제철에서 8년동안 쇳물을 다루면서도 틈틈이 공부해 포항전문대를 졸업하고 제강기능사1급 등 8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연세대 의대에 입학,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활동하다 98.99년 코 성형 관련 인터넷 사이트 2개를 개설했다.

"환자 절반이 홈페이지를 통해 찾아오는 것을 보고 본격적인 인터넷 사업을 구상하게 됐다" 는 鄭교수는 영상전달시스템(PACS).전자저널시스템 개발 등 5개 분야의 비즈니스 모델 특허출원까지 해 놓았다.

그는 병원 퇴근 후 인하대 벤처센터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 밤 1~2시까지 작업하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집으로 퇴근하는 일을 매일 반복한다.

鄭교수는 "인생은 새로운 것을 향한 도전" 이라며 "지금도 어려울 때면 방열복과 방열장갑을 끼고 1천5백도가 넘는 용광로 앞에서 쇳물 나르던 시절을 생각하며 투지를 불사른다" 고 말한다.

노트북용 LCD 등을 생산하는 ㈜우영의 박기점(55) 회장은 69년 박사급 연구원이 즐비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에서 기능원으로 출발, 연간 매출 3천억원대의 기업을 일궈냈다.

우영은 노트북컴퓨터용 LCD(액정화면)와 프린터.팩시밀리의 화상처리 소자 등을 생산하는 기업.

朴회장은 KIST 공작실에서 8년여간 익힌 정밀금형제작 기술을 밑천 삼아 77년 서울 근교의 허름한 금형공장을 인수해 독립했다.

문제는 자금. "직원들 월급 줄 돈조차 모자라 부도 위기에 몰린 게 한두번이 아니지만 타고난 부지런함과 기술력으로 버텨왔다" 고 한다.

그는 요즘 KIST로부터 1백40여평의 연구실을 할애받아 KIST와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朴회장은 "프린터.팩시밀리.인쇄기를 하나의 기기로 결합하는 기술과 초절전 광학기술에 승부를 걸어볼 생각" 이라고 말했다.

상고 졸업(75)-은행원 근무(75~88)-늦깎이 미국 유학(88~96)-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전산학과 교수(98~현재). KAIST 박대연(45) 교수의 인생유전이다.

가난 때문에 못했던 공부를 하고 싶어 33세때 은행 퇴직금 1천3백만원을 들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돈이 떨어지기 전에 학부 과정을 마쳐야 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4년 과정을 1년3개월만에 끝냈습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KAIST에 채용된 뒤에도 끊임없이 공부에 매달렸다. 연구를 위해 결혼도 미뤘다.

98년 ㈜티맥스소프트웨어를 설립해 소프트웨어 시장에 도전했다.

朴교수는 "올해 개발한 웹투비의 경우 기존 세계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아파치' 보다 10배 빠른 것으로 최근 벤치마킹테스트에서 입증됐다" 고 자랑했다.

지난해 1억원이던 회사 매출도 올해 2백억원, 내년에는 1천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7월에 본사를 실리콘 밸리로 옮긴다. 내년에는 나스닥에 상장할 계획.

"세계 시장의 표준이 될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만들겠습니다. 번 돈은 재능있는 고아들 교육에 쓰겠습니다." 朴교수의 소박한 꿈이다.

철도고등학교 출신의 유니텔 강세호(45)대표는 다양한 경력을 자랑한다.

가정형편상 고교진학이 어렵게 되자 무작정 상경, 수업료가 전액 면제되는 철도고에 응시해 합격했다.

"무조건 열심히 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 이런 노력 덕에 姜대표는 연세대 전기공학과 재학중 기술고등고시에 합격했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지난해 한국소프트창업자문 사장 공모에 응시해 수십대1의 경쟁률을 뚫고 대표에 뽑혔으며, 올 3월 유니텔 대표로 전격 발탁됐다.

최근 "유니텔을 국내 최대의 인터넷 업체로 키우고 직원들은 전원 백만장자로 만들어 주겠다" 고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글〓고종관.박방주.이석봉.김종윤 기자, 사진〓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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