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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어’만은 추방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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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이윤배
조선대 교수·컴퓨터공학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현존하는 언어들 가운데 가장 과학적이고 정보사회에서 가장 유용한 문자로 인정하고 있는 한글을 우리는 갖고 있다. 그러나 1990년 한글날이 이런저런 이유로 공휴일에서 제외됨으로써 한글은 국민들의 관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문화부의 조사 결과 한글날의 정확한 날짜(10월 9일)를 알고 있는 사람은 63%에 불과했다. 우리 스스로 한글을 알게 모르게 홀대하고 천시하는 풍토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물론 물밀듯 밀려오는 새로운 문물과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새로운 명칭이나 용어를 다 한글로 바꾸어 사용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적 불명의 외국어, 통신언어의 부문별한 남용이 우리글, 우리말을 알게 모르게 훼손하고 오염시키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런데 외래어나 외국어 남용이 가장 심한 곳은 공교롭게도 한글 사용을 바르게 선도하고 이를 실천해야 할 ‘방송사 등 언론기관’들이다. 요즘 잘나간다는 연예인들이 아무런 사전교육도 받지 않은 채 대거 방송 진행자로 등장해 외래어나 국적 불명의 외국어를 남발하면서 우리말을 더욱 왜곡시키고 폄훼하고 있다. 특히 네티즌들은 일어, 한자, 그리스 문자는 물론 컴퓨터의 도형 모음 등에서 한글의 모음이나 자음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아 새로운 형태의 ‘외계어’를 만들어 통용시키고 있다. 초기 통신 언어는 사용상 제약성과 의사소통을 신속히 하기 위해 음운을 줄이거나 받침을 없애는 방식으로 나타났지만 2단계라고 할 수 있는 외계어는 기성세대를 배제한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청소년들의 또 다른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통신언어와 일반 언어를 구별하는 성인과 달리 이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여과 없이 외계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우리말을 왜곡하고, 언어를 배워 가는 청소년들에게 그릇된 언어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올바른 통신언어 사용을 위한 교육과 함께 국어 문법 교육을 강화하는 등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한글이 올바르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한글날을 다시금 공휴일로 지정되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어 능력이 100점 만점에 평균 60점도 못 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채 외래어나 국적 불명의 외국어를 남발한다는 자체가 바로 사대주의 근성이자 주체성 상실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윤배 조선대 교수·컴퓨터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