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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양 돌리 산실 영국 로슬린 연구소

중앙일보

입력

복제양 돌리로 상징되는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는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사람만 많았지 연구실적이 미미한 ''돈먹는 하마'' 로 여겨졌었다.그러나 이제는 대담한 구조조정과 국가전략에 초점을 맞춘 생명공학연구에 몰두함으로써 영국 과학기술의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

로슬린이 규모면에선 미국 연구기관들에 못미치나 짜임새 있는 연구로 생명공학 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연구소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 배경에는 정부의 전략적이고 집중적인 지원이 있다.

1997년 ''복제양 돌리'' 를 공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영국 정부 산하의 로슬린 연구소. 지구촌의 치열한 생명공학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미지와 달리 로슬린 연구소는 스코틀랜드의 옛 수도 에든버러에서 남쪽으로 10㎞쯤 떨어진 평온한 농촌에 자리잡고 있다.

연구소내 목장에서 새끼양들과 함께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던 복제양 돌리는 기자가 다가가자 "매에" 하는 울음과 함께 얼른 울타리 근처로 달려왔다.어른 세포에서 복제돼 탄생한 최초의 포유동물인 돌리는 털을 모두 깎아 볼품이 없었지만 낯선 방문객에게 연신 먹을 것을 달라고 채근하는 모습이 여느 양과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자신이 생명 과학의 발전에 혁명적 신기원을 이룩한 존재라는 사실엔 관심이 없는 것 같죠?" 기자를 안내한 해리 그리핀 박사의 농담 속에는 인류 의학의 미래를 바꿔놓겠다는 로슬린 연구소의 당찬 야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실제 돌리 복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이언 윌머트 박사는 "우리의 목표는 약물이나 외과적 수술이 어려운 인간의 질병을 세포로 치료하는 것" 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자. "약물이나 수술은 다소간의 차이는 있어도 부작용 또는 거부반응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됩니다. 그만큼 한계가 있는 거죠. 그러나 환자의 몸에서 추출한 세포를 유전자 조작과 함께 복제한 뒤 다시 투입하면 전혀 부작용이 없습니다. 그 세포들은 원래 환자 신체의 일부였으니까요. "

그는 물론 ''이론적'' 이란 단서를 달았다. 아직 연구단계에 있을 뿐 임상실험을 마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세포의 손상이나 결핍 등으로 초래되는 질병에 로슬린 연구소가 갖고 있는 핵전이 복제기술이 응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파킨슨병.당뇨병.관절염, 나아가 심장마비.알츠하이머.백혈병을 대표적인 질병으로 꼽는다.

예컨대 백혈병의 경우 환자의 건강한 피부 세포에서 핵을 추출, 인간의 난자에 옮겨심고 이를 배양한다. 그리고 배양된 세포가 배아 상태로 성장하면 여기서 세포를 다시 추출.증식시켜 환자의 골수에 이식하는 것이다.

로슬린의 과학자들은 이미 배아에서 추출한 세포들을 필요에 따라 각각 근육.신경 또는 장기(臟器) 의 섬유세포로 증식시키는 연구에 상당한 진척을 보고 있다.

환자 신체의 어떤 부분에 이식하든 이들 세포는 환자 자신의 DNA를 함유한 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체의 거부반응 없이 완벽하게 환자의 생체조직과 융합할 수 있다.

케임브리지의 웰컴 CRC 연구소의 앤 맥라렌 박사도 "로슬린이 성공한 배아 복제기술은 향후 3년내 소아의 백혈병 치료에 응용될 수 있을 것" 이라고 단언했다.

로슬린 연구소는 또한 복제과정에서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데도 이미 새 장을 열었다. 이렇게 탄생한 또 한마리의 복제양이 ''폴리'' 다.

로슬린의 연구팀은 돌리의 세포를 복제해 폴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폴리의 DNA에 새로운 유전자를 주입, 젖 생산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특히 폴리는 자신의 이같은 형질을 후손에까지 물려줄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같은 생명공학 기술은 이미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87년 로슬린의 연구진에 의해 설립된 생명공학 벤처기업 PPL 테라퓨틱스는 지난해 유전자를 조작한 양의 젖에서 분비되는 단백질을 이용, 지혈제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PPL의 에이프릴 다크리 박사는 "인간 혈청과 같은 성분으로 구성된 지혈제로 자연 상태에서의 혈액응고와 똑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혈우병 치료제로도 응용이 가능하다" 고 설명했다.

이러한 유전자 조작과 복제를 인간에게 응용할 경우 질병 치료는 물론 특정 질병에 강한 형질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성급한 사람들이 복제양을 바라보며 앞으로 ''우수한 형질로 디자인된 인간 복제'' 를 점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 복제는 그야말로 어불성설이고 질병 치료를 위한 세포 복제조차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로슬린측은 솔직히 고백했다.

배아 복제기술은 고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실제 성공률은 1%를 조금 웃도는 실정이다. 돌리의 경우 2백77번의 시행착오 끝에 간신히 성공을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유산 또는 출생 직후 새끼양이 사망하는 사례도 있었고 기형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아직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로슬린에 있는 3백여명의 과학자들은 현재 이처럼 낮은 복제 성공률을 끌어올리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전력투구하고 있다.

로슬린은 이를 위해 98년 설립한 생명공학 벤처기업 로슬린 바이오메드를 지난해 미국의 지론사에 매각하는 데 합의했다. 로슬린은 지론으로부터 6년간 1백25만파운드(약 2백20억원) 를 지원받아 복제 성공률을 높이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인간의 질병 치료를 위한 세포 복제의 경우 인간의 배아를 통해서만 가능한 현재의 기술 수준을 시험관에서도 이뤄질 수 있도록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이같은 기술이 현실화될 경우 인간의 배아를 이용하는 데 따른 미묘하고 복잡한 윤리적 논란을 벗어나 자유로운 신기술 개발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임 환자들을 위한 시험관 아기가 현실화할 것처럼 약물이나 수술로 치료가 어려운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위한 ''시험관 복제'' 시대의 도래도 그다지 멀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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