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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기업도 ‘역사의 큰 줄기’ 읽을 줄 알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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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한 달 전쯤이었을까 라디오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광고문구가 내 귀를 때렸다. 한 식품회사가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전체 생산공정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방송한다는 내용이었다. 위생관리가 핵심인 식품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들의 궁금 요소를 예리하게 포착해 낸 컨셉트가 분명해 보였다. 우선은 소비자로부터의 신뢰 확보며, 그 다음은 생산 과정에 대한 자기규율성 제고가 아닐까 싶다.

 요즘 슈스케3가 화제다. 미국 ‘아메리칸 아이돌’의 모작이지만, 국내에서는 원작을 뛰어넘는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프로의 특징 역시 오디션의 전 과정을 중계방송한다는 점에 있다. 일방적 주입에서 상호작용으로 패러다임이 옮겨졌다. 이런 시프트를 통해 방송 역시 일거양득을 노리려는 모양이다.

 물론 식품회사와 슈스케 제작사들에도 공짜 점심은 결코 없다. 식품회사의 경우 만일 비위생적인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 역시 전국적으로 생중계될 것이고, 자칫 회사는 한방에 공든 탑을 허물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슈스케 제작사 역시 마찬가지다. 슈스케3의 한 밴드처럼 과정상에서 참가자들과의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도 있고, 무대 뒤를 공개함으로써 부담해야 하는 인적·물적 자원 투입요소들이 만만치 않다. 그것을 비용으로만 계산하고 말았더라면 아마도 그런 훌륭한 프로는 제작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창한 표현을 빌려보면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이 그들의 판단이 옳았음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1455년 구텐베르크가 찍어낸 42행 성서는 인류 역사의 방향을 돌려놓았다. 그가 발명한 금속활자 인쇄술로 인해 소수 성직자들이 독점했던 성경이 다수의 대중들과 공유됐다. 1517년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95개 반박문 역시 인쇄술을 타고 불과 2주 만에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그 이전까지 수동적이고 제각각이었던 대중들이 인쇄물이라는 매체를 통해 계몽되고 규합된 것이다.

 기업들도 기업 역사의 큰 방향성을 읽어야 한다. 기업 정보 역시 더 이상 소수 독점적이지 않다는 점,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역시 과거처럼 피동적이지 않다는 점이 그것이다. 따라서 투명한 경영과 쌍방향 경영은 그 어느 때보다 의미심장하다. 그것에 타이틀을 붙이면 바로 ‘지속가능 경영’ 혹은 ‘사회 책임경영’이 된다.

 최근 필자가 지속가능 보고서 제3자 검증에 참여했던 KT 사례는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석채 회장 취임 이후 KT는 지속가능 경영에서 발빨랐다. 무엇보다 이해관계자들의 가렵고 어려운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청취해 경영정책에 반영했고, 올해는 그 내용들을 제3자 검증을 받아 비교적 소상하게 지속가능 보고서에 담아 공개했다. 협력사에 대한 3불(不)정책, 종업원들에 대한 스마트 워킹, 국제통화가 빈번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 등은 산업의 특성이 적절히 반영된 지속가능 경영 사례로 파악된다. 필자는 우리 경영자들이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격언을 경영 현장에 가져올까 우려된다. 그것은 현대적 의미의 지속가능 경영 원칙과 배치되는 까닭이다. 정승같이 쓰지 않더라도 돈 버는 과정에서 정승같이 행동하는 것이 지속가능 경영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식품회사와 슈스케의 성공 비결을 지혜롭게 읽어낸 기업들은 ‘그들만의 기업’이 아닌 ‘우리들의 기업’으로 우뚝 설 것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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