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북한 시론

아우슈비츠행 기차가 달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고문
전 통일부 차관

아우슈비츠 수용소행 기차로 실려 가는 유대인들의 불안과 공포. 지금 중국의 옌볜(延邊) 근처 불법 월경자 구류소에 갇혀 있는 35명의 탈북자들이 겪는 불행이다. 그중 두 명은 한국에 정착해 한국 여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탈북자를 북한으로 강제송환한다면 중국은 자신이 가입한 여러 국제조약의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다. 우선 이는 중국이 1982년 가입한 난민조약 제33조 1항의 ‘송환금지 원칙’에 어긋난다. 이 조항은 “난민을 어떠한 방법으로도 인종, 종교,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 때문에 그의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토로 추방하거나 송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이 북·중 국경협정을 이유로 이러한 난민조약상 의무를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어서 국제조약의 의무이행에 더욱 모범적이어야 한다.

 중국은 탈북자들이 난민이 아니고 주로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나온 경제적 이주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북한 당국이 적대계층으로 분류해 식량배급체계에서 제외시킨 지역의 사람들이다. 즉 신분이나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난민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자유를 위해 탈북한 사람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탈북자 강제송환은 중국이 1981년 가입한 인종차별금지조약을 위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은 1975년 베트남 통일 후 발생한 중국계 난민을 보호한 적이 있는데 북한 이탈자를 다르게 대하면 차별인 것이다.

 1986년 중국이 가입한 고문방지협약도 탈북자 강제송환을 막고 있다. 제3조는 “고문받게 될 위험성이 있는 국가로 추방·귀환이나 인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국은 양자(兩者) 조약상 인도 의무가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고문받을 위험성이 있다면 인도해서는 안 된다. 이는 강행 규범이다.

 중국은 그 외에도 사회권규약, 여성차별철폐협약,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했다. 이러한 주요 5개 인권조약의 이행감독위원회들은 중국의 정기보고서를 심사하면서 재중탈북자와 관련한 중국의 인권법 위반에 우려를 표명하고 의무이행을 촉구했다. 2009년 8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중국 정기보고에 대한 최종 견해는 탈북자가 난민지위 판정을 체계적으로 거부당하고 강제송환되고 있는 현실에 우려를 표명했다.

 국내법과 달리 국제법에서는 위반 시 이행 절차가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이 조약의 이행과 관련된 조항을 유보했다고 해서, 조약 의무 위반 자체가 부인되지는 않는다. 조약 위반은 국제법 위반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책임은 막중하다. 유엔은 안전보장, 경제협력 증진과 함께 인권보호를 3대 목표로 하여 창설됐다. 헌장 제56조는 모든 회원국은 차별 없는 인권보호를 위해 유엔과 협력하고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규정했다.

 북한이라는 심각한 인권침해 국가를 이웃으로 하고 있는 중국의 어려운 입장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느 누구나 향유해야 하는 기본적 인권을 탈북자들한테서 박탈하는 것, 특히 탈북자들을 박해받을 지역으로 강제송환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정치대국 중국의 도덕성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강제송환의 위험 속에서 떨고 있는 35명 탈북자의 안전과 인권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너무나 절실한 요구다. 이러한 기본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강대국이라면 한반도가 그 옆에서 어떻게 평화스러운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외교 당국의 분발을 기대한다.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고문 전 통일부 차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