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수 잘못 찾은 월스트리트 시위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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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호 20면

오색 풍선을 들고 음악에 맞춰 행진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봐서는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거리축제인지, 1960년대 히피들의 시위 같은 것인지, 항의성 집회인지 잘 모르겠다. 뉴욕을 시작으로 전국 150여 도시로 확산된 이 시위를 제대로 살피기 위해 시위대 웹사이트의 시위 중계를 봤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분노는 무엇을 향한 것인지, 시위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끝내 알 수 없었다(물론 자본주의·은행·탐욕·소득불평등·세금·빚더미 등 다양한 것들이 분노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있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시위대의 한 남자는 “수많은 이가 해답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봐서 기쁘다”고 말했다. 해답이라고? 시위대가 더 힘을 얻고자 한다면 명확한 목표부터 찾아야 한다. 베트남전 시위처럼 구체적 목적이 있거나 중동에서 벌어진 시위처럼 분명한 지향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시민의 불만을 영향력 있는 반정부·반기업 행동으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성공적인 공격을 위해서는 건설적 대안도 필요하다.

물론 구체적으로 원하는 바를 표현한 시위자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는 부채 탕감, 대체에너지와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수십억 달러 투자 등 ‘뜬구름’ 같은 것이 대다수다. 이들은 정부가 어디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시위대의 슬로건 중엔 이런 것도 있었다. “우리는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1%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99%의 사람들이다.” 상위 1% 부자에게 엄청난 세금을 물린다 한들 나머지 99%에게 충분한 자금을 마련할 수는 없다.

젊은이들이 분노할 대상을 제대로 찾고자 한다면 터프트대학의 크리스토퍼 맥휴 교수의 강의를 들어보라고 하겠다. 정부가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부담을 젊은이들에게 지우려는 것, ‘세대 경제(Generational economics)’에 관한 내용이다. 이런 부채 부담은 향후 삶의 수준을 낮출 것이 분명하다. 할머니를 102세까지 부양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대기 위해 생산을 위한 투자를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오히려 이런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아마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은행 구제금융과 기업에 대한 특혜를 향해 분노를 발산하는 게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상황을 초래한 시스템을 만든 의회는 간과했다. 향후 10년간 재정지출을 최소 1조2000억 달러 삭감해야 하는 의회의 특별위원회는 베일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정치꾼’처럼 로비스트에게 물어야 한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민주·공화당의 로비스트들은 기업 고객들의 이익을 위해 여전히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예산 감축을 논의할 수퍼위원회는 100여 명의 로비스트를 고용했다. 하지만 보통의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월스트리트를 점거한 시위대엔 그들의 이익을 위해 일해 주는 로비스트가 없다. 우리에겐 정치자금과 세금 혜택을 교환할 수 있는 선택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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