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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미래, 이 세 남자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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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잡스의 경영 유전자(DNA)를 모두 물려받을 수 있는 인물은 애플에 없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가인 레지스 매키너가 2008년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내린 진단이다. ‘천재성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창업자’인 잡스의 자리를 한 사람이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 이상 잡스의 ‘계시’에 기댈 수 없게 된 애플은 ‘CEO리스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애플은 일단 ‘삼두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잡스는 췌장암 진단을 받은 2003년 이후 집단 지도체제를 도입하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시험 가동도 해봤다. 그가 2009년 병가를 떠났을 때였다. “그럭저럭 작동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6일 보도했다.

 삼두체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CEO인 팀 쿡(51)이다. 그는 잡스의 비전 관리인임을 자임했다. 그는 지난달 잡스의 퇴진 직후 “애플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잡스가 좋아한 일을 헌신적으로 해내는 방식으로 그를 기릴 것”이라고 못박았다. 유훈 통치에 의존하겠다는 얘기다.

 실제로 쿡은 이달 5일 아이폰 4S 발표 자리에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잡스의 이미지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인사말만 하고 곧바로 무대에서 퇴장했다. 이후 “잡스의 카리스마나 비전 DNA까지 물려받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쿡의 특기는 관리다. 블룸버그통신은 쿡이 “영혼이 없는 관리 머신(Machine)으로 불린다”고 전했다. 이런 능력 때문에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의 제작과 판매가 큰 무리 없이 이뤄졌다. 그는 또 애플 내에서 조직을 작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꼽힌다. 로이터통신은 “그는 애플 직원들이 병가 중인 잡스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도록 느끼도록 해 조직의 이탈이나 요동을 최소화했다”고 보도했다.

 “잡스의 디자인 본능은 조너선 아이브(44) 산업디자인 담당 부사장이 물려받았다.”(미 에코디자인 대표인 에릭 챈) 아이브는 애플의 디자인 헤드다. 생전 잡스의 디자인 파트너였다. 그는 90년대 애플 복귀 이후 성공을 갈망한 잡스에게 속이 비치는 아이맥을 내놓았다. 대성공이었다. 이후 아이브는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를 줄줄이 히트시켰다.

아이브는 경영이나 마케팅엔 아주 무심한 인물이다. 챈은 “아이브가 이끄는 디자인팀은 애플 본사인 인피니트루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곳”이라며 “CEO인 쿡 등 극소수 외엔 아무도 그에게 지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잡스는 프레젠테이션(PT)의 귀재였다. 그는 청중의 호기심을 어떻게 자극해야 하는지를 잘 알았다. 이런 DNA는 고스란히 필 실러(51) 글로벌 마케팅 담당 부사장의 몫이 됐다. 실러는 잡스의 메시지 담당관이었다. 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대 연설문 등이 실러의 손에 의해 탈고됐다. 그는 잡스가 병가를 냈을 때인 2009년 아이폰 3G를 성공적으로 발표했다. 또 아이팟 이후 애플의 톡톡 튀는 광고 문구를 모두 만들어 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연설문 참모인 존 파브로는 “실러는 무대 위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학대한다”며 “청중의 쾌감을 최대한 자극해 목적을 달성하는 테크니션”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한때 실러는 잡스의 후계자로 꼽혔다. 애플 내에서 잡스 다음으로 대중적 인기를 누려서였다.

 세 사람이 이끄는 애플은 어떤 모습일까.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 사망 직후 “비범한 존재가 사라졌다”며 “이제부터 애플 경영은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과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 모멘텀이 약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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