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중국인들은 공자 때부터 반성하는 데 인색한 것 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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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공자님 말씀’ 하면 ‘고루한 잔소리’의 동의어로 들리는 귀들이 많을 터다. 공자를 잘 모르는 귀일수록 더 그렇다. 하지만 동서양을 통틀어 그만큼 영향력 있는 사상가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50년 동안 동서양의 1만 년 문명사를 열한 권의 『문명 이야기』로 집대성한 윌 듀런트 같은 석학도 공자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었을 정도다. 고루함 역시 그의 철학이 인간 대소사에 이미 깊이 뿌리내려 있다는 사실의 역설적 표출이나 다름없다.

 사상가를 넘어 성인의 반열에 올라 있는 공자지만, 생전엔 체면을 구긴 일이 여러 번 있었다. 특히 진(陳), 채(蔡) 양국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며 이레를 꼬박 굶는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주린 배에 좋은 낯빛 나올 리 없다. 일행들은 고사하고 믿었던 제자들마저 성질을 부렸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공자는 ‘간부 학생’들을 따로 불러 대화를 시도한다. “우리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자로와 자공, 안회의 대답이 다 다르다. 먼저 분위기 파악 못한 자로다. “우리가 어질지 못해 그런 것 아닐까요?” 자공은 현실적이다. “선생님의 도가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조금 낮추시면 어떻겠습니까?” 안회는 입 발린 소리를 한다. “선생님의 도가 너무 커 세상이 받아들일 수 없지만 스스로 행하고 계시니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정답은 안회였다. “현명하구나. 안씨네 아들이여. 내가 부자라면 집사로 삼을 텐데.” 공자는 처지가 어렵다고 뜻을 바꿀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었던 것이다.

 이런 공자가 어리석은 후손들 탓에 2000년도 더 지난 오늘 다시 한번 체면을 상하게 됐다. 중국 정부의 야심작 ‘공자평화상’이 1년 만에 폐지된 까닭이다. 지난해 반체제인사 류샤오보(劉曉波)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열 받은 중국이 대거리로 만든 상이었다.

 하지만 첫걸음부터 발이 꼬였다. 1회 시상식을 노벨평화상 시상식 전날로 잡았지만 정작 김이 샌 건 노벨이 아니라 공자였다. 초대 수상자인 롄잔(連戰)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이 “들은 바 없다”며 불참한 것이다. 결국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여섯 살 소녀가 상금과 트로피를 대신 받는 황당한 장면이 연출됐다.

 갈지자 걸음은 올해도 계속됐다. 중국 당국은 2회 수상자 후보로 티베트 불교 2인자인 판첸 라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선정했다. 이번엔 중국 네티즌들이 먼저 나섰다. “독재자 푸틴이나 꼭두각시 판첸 라마가 수상감이냐.” “중국을 비판해온 메르켈 총리한테 주는 건 상업적 계산 아닌가.”

 국제적 망신과 국내적 비판에 견디지 못한 정부가 슬그머니 발을 뺐지만 잘못을 깨닫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2000년 전 공자처럼 말이다. 그래서 윌 듀런트보다 공자에 대해 열 배쯤은 잘 알 리중톈 교수 같은 이가 “중국인들은 공자 때부터 반성하는 데 인색한 것 같다”고 개탄하는지 모르겠다.

이훈범 j 에디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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