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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지만 고독한 - '금성무'

중앙일보

입력

'왕가위' 감독은 타고난 스타일리스트이기도 하지만 '스타제조기'라 불러도 좋을 듯 하다. 〈열혈남아(熱血男兒)〉에선 연기자로서의 '장학우'와 '장만옥'을 발굴했으며 〈중경삼림(重慶森林)〉과 〈타락천사(墮落天使)〉를 통해선 '금성무'와 '왕정문', 그리고 '이가흔'을, 〈춘광사설〉에선 '장진'을 발굴했다.

그중 한국 여성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은 배우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금성무(金城武)'이다. 한순간의 마주침을 영원한 사랑으로 간직하고 했던 〈중경삼림〉의 낭만적인 형사 '금성무'. 긴 머리카락 사이로 고독한 눈빛이 빛나는 그를 만나보자.

대만과 홍콩을 경유해 한국, 싱가폴, 일본을 거쳐 미국까지 진출한 '금성무(일본이름:가네시로 다케시)'는 1973년 일본인 아버지와 대만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키나와 출신이며 '가네시로'라는 성도 아버지를 따른 것이다. 국적은 일본. 그는 아버지로부터 일본어를, 어머니로부터 대만어를 배웠으며 북경어를 공용어로 쓰는 대만에서 자랐다. 대만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 학교를 다녔다.

학교를 다니며 모델을 하다 93년 가수로 데뷔했다. 가수로서의 첫 앨범 〈이별한 밤에〉를 발표한 뒤 연기와 노래를 오가며 인기를 얻었다.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을 하는 등 음악가로서의 자질도 뛰어난 편. 대만에서의 인기를 등에 업고 홍콩에 진출, 광동어로 연기했다. 이러한 독특한 성장과정 덕분에 일본어를 비롯한 대만어, 북경어, 영어, 광동어까지 5개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금성무'는 대만의 외국인 학교에 다니면서 광고를 찍기 시작했고 가수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93년까지 연기라고는 드라마 한 편에서 단역을 맡았던 것이 고작인 그에게 홍콩 액션영화의 달인 '정소동' 감독이 찾아왔고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는 가수로서의 생활에 더 만족했다. 마음을 고쳐먹고 영화를 찍기 시작하게 된 동기는 바로 홍콩 최고 스타 '성룡'의 조언 때문. 이후 2년 사이에 무려 11편의 영화를 찍었다.

'왕가위' 감독과 그를 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금성무'는 '왕가위'가 선택한 최초의 90년대 스타. 〈중경삼림〉이전 '금성무'는 그저 '잘생긴 스타'였을 뿐이다. 사소천왕(四小天王)중의 한 명이긴 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아무도 그가 톱 스타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금성무'는 왕가위를 만나 연기자로서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고 아시아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대부분 홍콩 영화에 등장하는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코믹연기를 하던 '금성무'가 어느날 갑자기 고독과 우수에 젖은 '하지무'(〈중경삼림〉과 〈타락천사〉의 극중 이름)가 된 것이다. 이런 '금성무'의 변화를 놓고 그의 노력 때문이라고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가위'의 공이 지대했다는데 동의한다. 〈중경삼림〉과 〈타락천사〉 이후 그가 출연한 영화들을 보면 이러한 생각은 더욱 굳어진다.

그가 97년 출연한 〈신투첩영〉은 홍콩의 최대 영화제작사 골든 하베스트사가 90년 중반 이후 저조한 홍콩 영화 부흥의 물꼬를 트겠다는 야심으로 제작한 영화. 기존 '지존파' 영화들의 단순함에서 벗어나 치밀한 각본과 최첨단 기술, 그리고 숨막히는 액션으로 홍콩 여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특이한(?) 영화 〈첫사랑〉과 〈친니친니〉를 거쳐 다국적 영화 〈불야성(不夜城)〉에 출연했다.

〈불야성〉은 홍콩, 대만, 일본 자본이 투입된 다국적 영화로 다시 한번 그의 스타성을 입증한 영화. 특히, '금성무'는 아버지가 일본인이라는 점에서 일본인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홍콩배우중의 한 명이다.(일본의 여러 설문조사에 의하면 최근 일본의 신세대 여성들이 첫 경험의 상대(개방된 일본의 성문화 덕분에 이런 설문조사도 가능하다)로 '금성무'를 꼽았고, 가장 낳고 싶은 아들상 역시 그를 꼽았다) 이후 '김혜수', '미라 소르비노'와 함께 '진원석' 감독의 〈투 타이어드 투 다이(Too Tired Too Die)〉에 출연함으로서 한국 팬들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았다.

최근작 〈심동(心動)〉은 〈유리의 성〉, 〈성원〉에 이은 홍콩 멜로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여성감독 '장애가'가 메가폰을 잡았다. '금성무'와 '양영기'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삶의 굴곡 속에 잊혀져 간 첫사랑의 추억을 달콤하면서도 가슴 아리게 담아낸 영화. 이룰 수 없었던 첫사랑의 느낌을 영상에 옮기려는 한 여성 영화감독이 시나리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틀을 짜내는 과정 속의 사랑이야기를 영상화하는 독특한 전개형식을 취했다.

터프하고 개성강한 외모와는 다르게 그의 성격은 의외로 내성적인 편. 만화 그리기를 좋아해 항상 주머니에 작은 수첩과 펜 한 자루를 갖고 다닐 정도다. 때론 유도를 즐기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을 하기도 한다. 홍콩 영화인들이 속속 해외로 눈을 돌리는 와중에도 꿋꿋이 홍콩을 지키고 있는 배우 '금성무'. 홍콩 영화의 쇠퇴로 많은 영화인들이 홍콩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향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홍콩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

※필자 조은성씨는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조감독, EBS 교육방송 〈시네마 천국〉구성작가를 거쳐 나우누리 영화 동호회 〈빛그림 시네마〉시삽, 잡지사 기자 등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웹PD와 영화 컨텐츠 전문가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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