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설(世說)

‘시니어 아카데미’ 개설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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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학규
MBC아카데미 경영기획국장

1950년대생(生) 시니어 집단. 그들은 치열하게 살아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중추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55세 전후의 이 집단은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우선 생물학적 나이보다 육체적·정신적으로 매우 젊고 건강하다는 점이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의 나이보다 7.7세 정도 젊다고 느끼며 70세가 넘어야 비로소 노인에 해당된다고 답했다. 또한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고학력자가 상대적으로 많아 지적 욕구가 강하다. 이들에게 퇴직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향후 8년간 무려 700여만 명, 즉 우리나라 성인 인구 5 명 중 한 명꼴로 속절없이 직장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가 거의 갖춰져 있지 않아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각종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강의하면서 시니어 집단과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들이 퇴직을 전후해 가장 공통적으로 털어놓는 고민은 경제적 어려움 외에 ‘집 밖을 나서니 갈 곳이 없다. 그리고 외롭다’는 말로 요약되었다.

 갈 곳 없고 쓸쓸한 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비영리 복합 문화공간인 ‘시니어 아카데미’를 설립, 이곳에서 고급스럽고 유익한 강의들을 부담 없이 수강하는 한편 대화의 장을 마련해 주고 재취업 등 제2의 인생설계를 지원해 주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시니어 아카데미에는 인간과 사회, 역사, 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인문학 강좌를 다수 편성해 지적 갈증을 해소하고 정신적 평화를 누릴 기회를 제공하되 수강료는 최소한의 실비만을 받는 형태로 운영돼야 할 것이다. 요즘 시니어들이 선호하는 색소폰, 요리, 스포츠댄스 등 취미와 실용강좌도 개설해 즐겁게 배우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니어 아카데미에서 공신력 있는 기관과 연계, 퇴직자 재취업 프로그램도 운영할 경우 상당한 호응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아카데미 설립에 막대한 투자가 소요되는 것도 아니다.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고 좀 더 진화된 사회공헌 사업을 계획 중인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이 진정성을 갖고 국내 최초로 시니어 아카데미를 설립하길 기대한다. 스웨덴의 경우 퇴직자 대상 시민교육학교를 무료 또는 실비로 150개나 운영하고 있다. 열화당(悅話堂)이라는 출판사가 있는데 ‘함께 모여 기쁘게 얘기하는 집’이라는 그 뜻이 무척 마음에 든다. 시니어 아카데미가 퇴직자들의 열화당 역할을 수행하는 즐거운 미래를 상상해 본다.

이학규 MBC아카데미 경영기획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