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의 지구촌 NGO 테마 탐방 ⑦ 가나 빈민마을의 사립학교 G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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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졸업식에서 축하공연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초등생들 [사진=GP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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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환경연구소
전문위원
남서울대 교수


1996년 여름 어느 날, 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서북쪽으로 15km쯤 떨어진 뉴 바웨(New-Gbawe)란 외곽마을에 30대의 한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다. 마을은 개발되지 않아 전기나 수도도 없었고 길도 엉망인 상태였다. 근처에는 학교도 없어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었다.

부부는 당시 러시아에서 석사 유학을 마치고 막 귀국한 가브리엘 니 라이와 그의 부인 수지 라이. 특히 부인 수지는 당시 가나의 유니세프 현장 프로젝트 직원이었다. 가나 사회에서도 엘리트인 이 부부는 평범한 삶을 포기했다. 뉴 바웨 마을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학교 사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아이들 두 명으로 학교를 시작했지요. 집 현관에서 공부를 가르쳤어요. 그리고 동네를 돌며 ‘무료로 가르쳐 줄 테니 아이들을 보내라’고 부모들을 설득했어요. 얼마 후 여덟 명으로 늘어났지요.”

아이들이 계속 늘어나자 차고로, 이어 집안으로 공부방을 옮겼다. 직접 아이들 간식도 마련했다. 그리고 학년을 편성하고 교사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나 교육청은 학교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6년 후인 2002년, 재산을 털고 후원금을 받고 해서 마침내 건물 1층이 완공되자 정식 학교 허가서가 도착했다.

“정말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때 남편은 한국 충북대에서 박사과정에 있었어요.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초청으로 한국에 유학을 가 있었지요. 저는 남편 따라 한국에, 또 가나에 왔다 갔다 하면서 학교를 세워갔습니다.”

이제는 뉴 바웨의 사립학교 GPS(Greater Provider School) 교장이 된 부인 수지(50)는 “정식학교 인가를 받았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 돈이 마련되는 대로 한 층씩 올려 2008년에 완공한 GPS 모습. 이 곳에서 유치원· 초등학교·중학교 학생 130명이 공부하고 있다.[사진=GPS 제공]

GPS는 그 후에도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주머니를 털고 후원금이 모아질 때마다 건물 한 층씩을 올렸다. 지금은 그럴듯한 3층 건물에 도서관·과학실험실·컴퓨터실까지 갖춘 어엿한 사립학교가 됐다. 한 반에 약 10명씩 유치원 2개 반, 초등학교 6개 반, 중학교 3개 반에 모두 130명이 공부를 하고 있다. 전임교사만 11명, 그밖에 한국의 (사)코피온 등 외국 원조단체들로부터 컴퓨터 교사 등을 지원받고 있다.

“그동안 동네도 많이 발전을 했지요. 중산층 가정도 많아졌고요. 그러나 가난한 아이들 학교라는 당초의 이미지 때문에 중산층 주민들 사이에선 일종의 낙인이 찍혀있습니다. 그러나 괜찮아요. GPS의 미션이 그런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려 한 것이었으니까요.”

GPS는 중산층 아동들에겐 일정액의 학비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저소득층의 아이들에겐 여러 형태로 수업료를 감면해준다. 그런 탓에 가난한 집안에서 계속 아이들을 학교에 등록시키기 위해 찾아온다.

수지 교장의 교육열은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중고 컴퓨터 20대로 어떻게든 컴퓨터실을 꾸려 IT교육을 시키고, 고교 입시를 준비하는 중3생들에게는 학교의 남는 방에 합숙을 시키면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졸업생들은 대부분 고교 진학을 하고 있다. 그 중에는 명문고에 입학한 학생들도 여럿이다.

“GPS의 설립목적이 가난한 가정의 아동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사립학교로서 운영에 힘이 많이 들지요. 그러나 기독교 정신으로 가난한 가정을 섬기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 학교의 등교시간은 오전 7시. 유치원생부터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 도착하면 먼저 한 시간 동안 교내 청소를 한다. 그리고 학교 앞 마당에서 8시 조회를 한다. 조회에서 청소가 잘 됐는지 점검을 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 성경 낭독, 국가 제창 등의 순서가 끝난 뒤 각자 교실로 들어간다. 오후 3시 반까지의 치열한 하루 공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15세기부터 400여 년간 유럽과 미국의 노예 수출 관문이었던 서아프리카의 가나. 그 가나에 이렇게 인간 상록수들이 소리 없이 어린 꿈나무들을 길러내고 있다.

중앙일보 시민사회환경연구소 전문위원, 남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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