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속의 능력 발굴 … 남 못지않은 CEO 되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여성들의 MBA 취득이 활발하다. 흔히 여성에게 부족하다고 평가되는 경영 전반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쌓기 위해서다. 남성들의 영역으로 인식됐던 제조업과 금융업계에도 거침없이 뛰어든다. KAIST MBA 윤여선 교수는 “기존의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MBA학위를 취득한 뒤 더 높은 자리로 이동하기도 한다”며 “남성과 동등한 금융·경제적 지식을 가지고 최고경영자를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이지은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MBA를 졸업한 한지연·이금숙·송희경씨(왼쪽부터)는 “MBA는 여성의 섬세한 업무능력과 기업에 대한 총체적인 시각을 결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최명헌 기자]

한지연(28·에이플러스에셋 사원)씨는 지난해 안정적인 법률컨설팅 회사를 스스로 퇴사했다. MBA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때마침 아버지가 건네준 중앙일보 MBA 기사에서 그는 해외대 복수학위 취득을 지원하는 서강대 SIMBA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서강대에서 3학기를 마친 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영국 런던에 있는 카스 비즈니스스쿨(Cass Business School)에서 2학기 동안 재무를 공부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MBA에 입학한 지 1년 6개월 만에 두 학교의 학위를 모두 취득했다. 한국에 돌아온 직후엔 종합 금융컨설팅회사에 입사하는 데도 성공했다.

 MBA가 여성의 경영능력을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 한씨의 생각이다. 그는 지난해 여름학기에 진행한 프로젝트에서 여성에게 숨어있는 경영능력을 깨달았다. 여자 동료와 단 둘이 준비한 프로젝트 발표가 끝난 뒤 그는 담당교수의 칭찬을 받았다. “남성으로만 구성된 팀이 수치적 자료에만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실제 현장의 요구사항과 이론을 접목한 점이 훌륭하다고 하셨어요.” 그는 “MBA는 여성들에게 부족하기 쉬운 ‘나무보다 숲 전체를 보는 능력’을 키워준다”며 “이러한 부분을 보완했을 때 경쟁력 있는 관리자로 기업을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송희경(47·대우정보시스템 상무)씨는 이공계 출신 경영자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도 정보관리학(Information Management)을 공부했다. MBA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건 5년 전 이사로 진급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이공계 출신이 기업을 운영하기에 부족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다”며 “거시적이고 실물 중심의 경제와 기업경영, 재무관리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학습을 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2월 KAIST EMBA(Executive MBA) 정규 석사과정을 마쳤다. 회사는 졸업과 동시에 그를 기술지원실장 이사 직급에서 상무로 진급시켰다. MBA를 공부하면서 기존의 업무 방식을 변화시켜 매출을 확장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의 사례를 배우는 과정에서 현장이 변화해야 할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내부 활동에 편중돼 있던 부서의 역할을 역동적인 지원·개발로 바꾸고 내부 매출도 일으키도록 지원했다”고 말했다. 올해는 회사의 주요 사업단 중 한 부문의 본부장으로 임명돼 지난해 3/4분기 대비 250% 이상의 영업성장을 이미 달성했다.

이금숙(65·용마엔지니어링 CEO)씨는 현장을 먼저 겪은 뒤 학문으로서의 경영을 접한 사례다. 그는 도로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중견기업체의 대표다. 여성CEO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업영역이다. 2002년 회사 창업주인 부군(故 이성희씨)의 갑작스러운 타계가 이 대표를 회장자리에 앉게 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전투현장과 같은 치열한 건축 수주현장에서 회사를 지켰다. 회사는 10년 전보다 직원도 늘었고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MBA에 입학하기로 결심한 때는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2009년께다. 어깨너머로 배웠던 토목전문이론과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획득한 업무지식에서 얻을 수 없는 새로운 경영전략이 필요했다. 그는 “경제 전문 용어가 늘 낯설어 경제전문지를 읽는데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다”며 “내 전문영역을 벗어나 더 큰 시각에서 경영자로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전국의 MBA에 대한 정보를 스스로 찾아나선 끝에 한양대MBA를 지난해 졸업했다. 이 대표는 “조직과 재무상태를 깊이있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점이 달라졌다”며 “MBA는 직원·간부와 효율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최고경영자에게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