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food&] 윤 기자 VS 이 부장 ┃ ⑦ 청국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8면

청국장. 세대와 성별에 따라 호불호가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음식 중 하나다. 20대 윤 기자는 냄새에 질려 아예 먹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청국장 매니어인 50대 이 부장으로선 이런 윤 기자가 이해가 안 간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쿰쿰한 냄새가 30리는 진동한다는 청국장을 일부러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세계에서 수퍼 푸드로 인정받은 우리의 전통음식 청국장을 지켜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하나 윤 기자는 젊은 층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퓨전 청국장 요리나 청국장 가공식품을 개발하자는 입장이고, 이 부장은 자고로 청국장은 찌개로 끓여 먹어야 제맛이라는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사진=김성룡 기자

몸에 좋아도 냄새 때문에 …

깔끔한 퓨전 청국장 어때요

‘콩두’의 청국장소스 두부 스테이크.

2년 전 제 첫 음식기사가 ‘청국장’이었어요. 그때 ‘청국장 취재’라는 명을 받고 등에 식은땀이 흘렀던 기억이 납니다. 먹는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제가 근처에도 못 가는 음식이 몇 가지 있는데, 청국장이 그중 하나거든요. 이름난 청국장집은 냄새도 유난히 진해 50m 전부터 퀴퀴한 냄새에 코가 저릴 지경이었어요. 그러니 맛을 평하기는커녕 맛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요.

‘내 생애 마지막 저녁식사’라는 호스피스 요리사의 글이 생각납니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에게 마지막 식사로 무엇을 먹고 싶으냐 물으면 거의 대부분은 어릴 적 맛있게 먹었던, 그리 호사스러울 것 없는 음식을 청한대요. 어릴 적 즐겨 먹던 음식이 평생의 식습관과 식성을 좌우하고 미각을 결정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아요.

제 경우를 비춰 봐도 그래요. 저는 이유식을 시작할 즈음부터 5년 동안 일본에서 살았어요. 음식의 맛을 알고 길들이는 시기를 일본에서 보낸 거죠. 게다가 어머니는 한국인이 집안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다 연기에 놀란 소방 시스템이 작동하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다든가 하는 얘기를 하도 들으셔서 혹시라도 냄새가 샐 만한 음식은 아예 만들지도 않으셨어요. 된장국도 일본 된장국을 끓이셨거든요.

귀국하자마자 어머니는 그동안의 한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 우리의 장이며 김치·젓갈·장아찌 등으로 열심히 상을 차리셨어요. 그때 청국장은 고약한 냄새로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는 음식이라는 강렬한 첫인상이 남았지요. 그래서 지금도 저는 청국장보다 낫토가 익숙해요. 낫토는 일본에서 유치원에 다닐 때 점심마다 빠지지 않고 나왔거든요. 그때 유치원 선생님이 낫토를 먹어 건강하고 똑똑해진 친구들이 나오는 동화를 들려주셨던 일이 생각이 나네요.

청국장과 낫토. 둘 다 삶은 콩을 바실러스균으로 발효시킨 음식이지요. 바실러스균이 살아 있는 볏짚을 넣어 자연 발효시키는 게 청국장이라면, 낫토는 바실러스균 중에서도 일본 정부가 허가한 ‘낫토균’만을 인위적으로 주입한 뒤 단단하게 포장해 발효시킨 것이지요. 낫토와 달리 청국장은 발효 과정에서 다양한 균이 침투하면서 특유의 냄새가 나게 되는데 이 균들 덕에 청국장은 더 많은 효능을 지니게 된대요.

그런데 이렇게 몸에 좋은 청국장이 싫다고 회사 구내식당에서 청국장이 나오면 코를 쥐고 인상 팍팍 쓰면서, 낫토 요리에는 열광하는 2030이 얼마나 많은데요. 청국장은 싫고 낫토는 좋다는 게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만의 특별한 사례는 아니라니까요. 서너 해 전부터 라멘·카레·돈부리(일본식 덮밥) 등 일식이 급속히 퍼지면서 일본 음식문화가 우리 젊은이에게 하나의 트렌드가 된 영향이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청국장=냄새 나는 옛날음식, 낫토=깔끔한 웰빙음식’이라는 이미지가 2030 사이에 점점 굳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청국장을 취재하면서 청국장에도 새 바람이 불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낫토 제조법을 차용해 무균실에서 발효시켜 냄새를 없앤 청국장이 있네요. 이 부장은 “그게 무슨 청국장이야!”라고 하실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떤 음식이든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소비계층을 넓히지 못하면 음식은 우리 식탁에서 사라져 버리고 마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젊은이도 즐길 수 있는 냄새를 줄인 퓨전 청국장 요리나 청국장 가공식품이 많이 개발됐으면 해요. 냄새를 뺀 청국장찌개·청국장잼·청국장초콜릿·청국장쿠키 등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제조 과정의 개선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어릴 때부터 좋은 식성을 길러 주기 위한 의도적인 식단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저는 아직도 그 유치원 선생님의 말씀을 철석같이 믿고 있거든요.

냄새 없는 청국장 요리와 낫토 안주가 있는 음식점

● 콩두(서울 신문로2가 2-1 서울역사박물관 1층·02-722-7002)=청국장소스 두부 스테이크 2만5000원(세금 별도)
● 별궁식당(서울 안국동 175-21·02-736-2176)=담백한 청국장찌개 8000원
● 니와(서울 이촌동 301-153·02-790-0917)=낫토 달걀말이 1만1000원

윤서현 기자

쿰쿰하지 않으면 청국장인가

일단 먹어보면 생각 바뀔 걸세

삼청동 ‘향나무세그루’의 청국장 찌개와 청국장 비빔밥.

자네 청국장 싫어한다고 했지. 고약한 냄새 때문이라고 했던가. 난 찬바람이 돌면 챙겨먹을 정도로 청국장을 좋아하네. 맛도 좋고 쿰쿰한 냄새가 추억을 되살려 주니 미각으로도 먹고 정서적으로도 즐긴다네.

늦더위 끝에 갑자기 쌀쌀해지면서 청국장의 계절이 성큼 왔네. 나는 청국장찌개를 직접 끓여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서 이 글을 쓰네. 이보다 앞서 음식점 일곱 곳을 돌며 열흘 사이에 열 번이나 청국장을 시식했네. 두 번은 한 끼에 두 집을 들르기도 했지. 나름대로 먹을 만했으나 내가 추구하는 맛은 찾지 못했네. 그래서 기억과 솜씨를 총동원해 자가처방을 했지.

준비물은 청국장과 물·고춧가루·무·소금. 청국장은 음식점에서 먹다가 맛있으면 주인에게 팔라고 떼를 써서라도 사다가 냉동실에 둔 것이고, 소금은 집에서 4년 묵힌 천일염. 결론은 기대치에 가장 비슷한 맛이었네.

서리 내리고 콩잎이 지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밭에서 콩 한 다발을 뽑아 이고 오셨지. 추수 전 임시로 부지깽이 타작해 마련한 해콩으로 청국장을 띄우셨어. 사나흘 만에 띄워 끓여주시던 청국장찌개는 된장에만 의지해 봄·여름 버텨온 입에 새로운 가을 별미였지.

청국장도 된장처럼 집마다 맛과 냄새가 다르지. 발효에 관여하는 종균들의 개성이 달라서 그렇다는 거야. 내가 기대한 건 해콩으로 고향집 안방 아랫목에서 띄운 청국장 맛이야. 짚에서 나온 바실러스균에 사람과 한 방에 사는 여러 종균이 다퉈 발효에 참견해 맛은 복잡해지고 냄새는 ‘골치아픈’ 놈이지. 나는 그 맛이 그립거든. 냄새와 맛은 별개라네. 끓일 때 냄새는 고약해도 맛은 구수하지. 고릿한 치즈가 맛있다고 먹는 입맛이면 고약하달 것도 없다네.

내가 끓이는 청국장찌개 구경 좀 해볼 텐가. 우선 맹물(혹은 쌀뜨물)을 올리고 가을무를 연필 깎듯 삐져 넣으면서 끓이지. 무가 무를 때까지 끓이다가, 밥이 뜸들 무렵 청국장 덩어리를 넣고 고춧가루 한술 넣은 다음 소금으로 간을 해. 그리고 잠깐만 더 끓여서 먹는다네. 첫서리 맞은 둥근 조선호박이 있으면 넣어도 좋지. 너무 간단하고 약소한가. 맛은 이게 좋아. 복잡하게 국물 만들어 맛내기 재료 여러 가지 넣고 끓인 것보다 담백하고 부드러운 청국장 본연의 맛이 살아 있어 나는 이렇게 해먹는다네.

청국장 본연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가장 오래된 청국장의 문헌기록 한번 보시게. 1760년 유중림이 엮은 『증보산림경제』의 ‘조전시장법(造煎醬法)’이라는 항목이네. 이대로 하면 요즘 것보다 더 맛있는 청국장이 만들어질 것 같아 장황하지만 전문을 소개하네.

‘혹은 전국장(戰國醬)이라 칭한다. 첫 서리가 내리면 해콩 한 말을 고르고 깨끗이 씻어 푹 삶는다. 볏짚자리로 싸서 온돌에 3일간 두어 실이 생기면 꺼낸다. 따로 콩 닷 되를 고소하게 볶아 껍질을 벗기고 가루로 만든다. 띄운 콩을 절구에 찧는다. 콩가루에 소금을 조금 넣고 절구 안의 띄운 콩에 붓고 햇볕을 쬐며 찧는다. 자주 맛을 보아 싱거울지언정 짜지 않게 한다. 곱게 찧어지면 꺼내서 가지·오이·동아·무 따위를 섞어 항아리에 넣고 주둥이를 막고 진흙을 발라 왕겻불 속에 하루를 두었다가 꺼내어 먹는다.(…고춧가루를 넣어 먹는다.)’

어떤가. 볶은 콩가루가 많이 들어간다는 게 색다르지. 요즘 청국장보다 더 구수하고 냄새도 덜할 것 같아. 중간에 넣는 과채에 간이 배면 찌개로 끓였을 때 맛이 좋을 것 같지 않은가.

자네는 냄새가 싫어 청국장을 안 먹는다 했는데 요즘 대부분의 음식점이 격리된 발효실에서 청국장을 띄우기 때문에 냄새 복잡한 청국장은 구경하기 어려워졌다네. 냄새 없다는 걸 집마다 자랑하니 이제는 그게 자랑이 아닐 정도가 됐다네. 내가 그 쿰쿰한 냄새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야.

냄새 걱정 말고, 조금 참고, 한번 먹어 보게. 세 번쯤 먹으면 낫토에 비해 거북하다는 고정관념이 흔들리기 시작할 걸세. 

이택희 피플위크앤데스크

이 부장이 다니는 청국장 집

● 향나무세그루 02-720-9524 서울 종로구 삼청동 62-18
● 사직분식 02-736-0598 서울 종로구 필운동 137- 4
● 안동할매청국장 02-743-8104 서울 성북구 성북1동 35-8
● 서갈비 청국장(갈비는 없음) 02-561-1019 서울 강남구 대치4동 897-3
● 마당넓은집 031-797-7771 경기도 광주시 실촌읍 곤지암리 358-1
● [택배]시골청국장 031-527-6821, 011-348-0877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 73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