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 방파제’ 반갑지만 당장 태풍 온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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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억원을 들인 방파제가 한 순간에 날아간 실수를 더 이상 되풀이 해서는 안됩니다.”

 대한민국 최서남단에 위치한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최병국(65) 이장의 말이다. 그는 강한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인 가거도에 초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이 설치된다는 소식에 “주민들과 협의를 거쳐 방파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9년간 쌓은 방파제가 태풍 무이파로 3년 2개월 만에 붕괴됐기 때문이다. 그는 “ 발파작업 탓에 집이 흔들리고 돌가루·먼지를 마시면서 산 세월이 20년이 넘는다”고 했다.

 서해어업관리단은 가거도에 105㎡(32평)크기의 아파트 100채와 맞먹는 1만700t짜리 초대형 케이슨(Caisson·콘크리트 박스)을 설치하겠다고 26일 밝혔다. 가로 40m·세로 20m·높이 26m 크기에 1만t급으로 방파제 앞에 제방을 하나 더 쌓는 효과가 있다. 108t짜리 큐브블럭과 100t짜리 시록(Sea Lock)도 쌓는다. 2016년까지 1206억원을 투입하는 이 사업이 마무리되면 ‘50년 빈도’의 설계 파고(8.3m)가 ‘100년 빈도(12m)’로 높아진다. 100년에 한 번 닥쳐올 만한 재해에도 견딜 수 있도록 한다는 거다.

 이 같은 발표에도 파도가 가장 센 ‘대한민국 핫코너’의 주민들은 불안하다. 완공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간간이 태풍 소식이 들려 올 때면 좌불안석이다. 현재 길이 500m의 콘크리트 방파제는 중간지점부터 균열이 생겨 일부는 부서지고, 100m는 아예 사라졌다. 방파제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4000여개의 테트라포드(사방으로 발이 나온 콘크리트 구조물)는 1700여개가 유실됐다. 발 하나가 어른 양팔 길이를 넘는 64t짜리지만 흔적도 남지 않았다. 방파제 끝에 설치한 108t짜리 콘크리트 큐브 블록도 바다에 널브러져 있다. 박원호 신안군 가거도출장소장은 “바다 쪽에서 보면 방파제가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기초공사를 하고 콘크리트를 타설하기 전에 깔아둔 사석이 유실되면서 기울어졌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태풍 북상 소식이 들리면 중소형급 선박들은 가거도에서 벗어나는 게 유일한 생존 대책이다. 배들은 75㎞나 떨어진 흑산도로 간다. 이 같은 피난은 매년 2∼3번씩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된다. 고흥산(75)선장은 “태풍이 제주도 인근 500마일 해상까지 오면 무조건 흑산도로 도망간다”며 “마을에서 10여척이 가는데, 왕복 기름값·숙식비 등으로 평균 2000만∼3000만원이 든다”고 했다. 때문에 주민들은 이번만큼은 확실한 방파제가 만들어 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임진욱(47)씨는 “김황식 국무총리가 가거도를 직접 방문해 약속한 만큼 확실한 안전 대책이 세워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지호·최경호 기자

◆가거도= 전남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45㎞ 떨어진 우리나라의 최서남단 섬. 중국 산둥(山東)반도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할 정도다. 일제가 소흑산도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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