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무대서 요즘은 한.미.캐나다...글로벌 삼국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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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호 14면

지난 21일 충남 금산군 금산읍 ‘2011 금산세계인삼엑스포’ 현장. 평일임에도 50만㎡(약 15만3000평) 규모의 행사장은 방문객들로 북적거렸다. 체험학습을 위해 단체로 찾은 중고생 외에도 중·노년층이 ‘고려인삼 입체영상관’ ‘생명에너지관’ 등 전시장을 채웠다. 생명에너지관에는 인삼 종주국을 상징하듯 지난해 2월 부산 원광사에서 발견된 1000년 묵은 인삼이 전시되고 있었다. 인삼 관련 업체들의 전시관인 ‘생명산업 교류관’에는 한국인삼공사 등 58개 국내업체 외에도 일본과 중국·베트남 등의 인삼업체 8곳이 부스를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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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에 전시된 천년 묵은 인삼(원 안)을 관람객들이 구경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권오룡 금산세계인삼엑스포조직위원회 위원장은 “평일에는 하루 평균 5만 명, 휴일인 주말엔 하루 평균 10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온다”며 “지난달 2일 엑스포 시작 이후 지금까지 180만 명이 찾았다”고 말했다.주행사장에서 9㎞ 떨어진 인삼 캐기 체험행사장에는 밭에서 직접 인삼을 캐서 사가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대전에서 왔다는 전윤남(49·여)씨는 “매년 이곳에서 직접 캔 인삼을 집에서 홍삼으로 만들어 가족에게 먹이고 있다”며 “덕분에 여태 온 가족이 감기 한번 앓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인삼엑스포 또는 축제는 금산에서만 열리는 게 아니다. 9, 10월 인삼수확철을 맞아 증평인삼골축제(10월 7~9일), 영주풍기인삼축제(10월 7~12일), 파주개성인삼축제(10월 14~16일) 등이 이어진다. 금산국제인삼엑스포(9월 2일~10월 3일)와는 별도로 매년 열려 온 금산인삼축제(10월 21~30일)도 남아 있다.

이런 열기에도 불구하고 고려인삼 종주국의 위상은 초라하다.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인삼 생산·수출국이었다. 하지만 이후 미국과 캐나다가 인삼 재배를 늘리고,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펴면서 세계 인삼 시장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지난해 세계 인삼시장에서 1위로 올라선 나라는 캐나다다. 우리나라가 2위, 미국이 3위다. 캐나다와 미국이 인삼 종주국 한국과 함께 ‘인삼 삼국지’를 펼치고 있는 셈이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90년 1억6500만 달러에 달하던 우리나라 인삼 수출액이 2002년 5500만 달러까지 추락했다. 이후 다시 상승곡선으로 들어서긴 했지만 2009년에서야 겨우 1억 달러를 턱걸이한 수준이다. 특히 세계 최대의 인삼 시장인 홍콩에서 우리나라 인삼 점유율은 2005년 2.8%까지 떨어졌다. 다행히 이후 다시 홍콩 수출이 늘기 시작해 지난해 26%를 기록, 2위 자리를 탈환했다. 농촌진흥청 현동윤 박사는 “미국·캐나다에선 트랙터를 이용해 대규모 농사를 지어 가격을 낮춘 데다 ‘고려인삼은 체온을 올리고 북미산 화기삼은 낮춘다’는 등의 외국의 잘못된 연구결과가 세계 시장에 번진 탓”이라고 분석했다.

‘인삼 1위국’ 캐나다의 인삼 재배 역사는 의외로 짧다. 70년 중국계 캐나다인을 중심으로 인삼 재배를 시작한 캐나다는 이후 홍콩시장에서 급성장했다. 2009년 뿌리삼 수출 실적이 8400만 달러로, 세계 인삼시장 점유율 30%를 넘겼다. 6400만 달러로 2위를 기록한 우리나라(점유율 23%)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급성장의 바탕은 연구와 투자다. 캐나다 걸프대·토론토대 등에서 기업과 손잡고 인삼의 효능과 품질 개선 등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농진청 방경환 연구원은 “최근 캐나다에서 인삼이 감기 예방은 물론 치료에도 효과가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건강보조식품의 형태로 인삼제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화기삼’이라 불리는 북미삼의 원산지다. 18세기 미국과 청나라 교역 당시에도 미국 인삼이 존재했다. 하지만 역시 세계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온 것은 70년대 이후다. 이후 연방과 주정부의 품질보증정책, 공격적 마케팅 전략으로 홍콩 등 주요 인삼 수입국에 인지도를 높여 세계적 인삼 수출국으로 등극했다.

유럽의 인삼산업도 무시할 수 없다. 스위스의 대표적 제약회사 베링거잉겔하임의 자회사인 파마톤은 인삼가공제품 시장 점유율 세계 1위 기업이다.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을 추출해 ‘진사나’라는 브랜드의 캡슐제품으로 생산, 판매해 연간 4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수천 년 전부터 고려인삼의 효능을 알고 있던 중국 역시 우리나라 인삼산업의 강력한 라이벌이다. 재배면적만으로 보면 세계 1위, 뿌리삼 수출로는 미국 다음인 4위다. 하지만 아직까지 품질과 가공기술 등이 떨어져 세계시장에서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다. 농진청 현동윤 박사는 “중국의 추격도 위협적”이라며 “국가적인 인삼 연구뿐 아니라 역사서 속에 ‘발해가 당에 공물로 인삼을 보냈다’는 기록을 근거로 '고려인삼은 중국 동북지방의 특산물이었으며 지금의 장백삼이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은 인삼 한 뿌리 나는 않는 지역이지만 ‘세계의 무역항’이라는 입지를 이용해 세계 최대의 인삼시장이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캐나다·한국 등에서 수입한 인삼을 이용한 가공제품을 북미와 중국 등에 역수출하고 있다. 관세장벽이 없는 세계 자유 무역항이라는 점을 적극 활용한 전략이다.

인삼의 종주국인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우선 가격 경쟁력에서 라이벌 국가들에 비해 떨어진다. 우리나라의 ㎏당 인삼 생산비는 미국의 1.9배, 캐나다의 1.4배, 중국의 6.9배에 이른다. 라이벌 3개국 모두 노동비·농약비 등 생산비가 우리나라보다 낮은데, 단위 면적당 생산 수량은 높다. 우리의 경우 재배 규모가 영세한 데다, 기계화율도 낮은 탓이다. 이 때문에 홍콩 등 세계 인삼 유통상들은 가격이 비싸고, 유통마진이 적은 고려인삼 취급을 꺼리고 있다.

홍삼의 원료인 6년근 인삼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인삼업계의 한 관계자는 “홍삼의 원료로 6년근 인삼을 고집하는 것도 가격을 올리는 주요인”이라며 “인삼을 6년 동안 키우다 보면 절반은 썩어버린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자료를 보면 4년근 이상 되는 인삼의 성분은 5, 6년근과 차이가 없다”며 “인삼을 6년근까지 키우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라고 덧붙였다.
인삼 특성에 대한 인식도 문제다. ‘고려인삼은 체온을 올려준다’는 인식 때문에 고혈압 환자들이 꺼리고, 일반인 사이에서도 가을 이후를 중심으로 매출이 형성된다. 반면, 거꾸로 ‘열을 내려준다’는 북미산 화기삼은 동남아 등 더운 지방을 중심으로 연중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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