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안철수 띄우는 까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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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호 31면

급기야 ‘안철수 바람’이 북한에서도 거론됐다. 북한 내각 기관지인 ‘민주조선’은 지난 23일 ‘남조선 정계를 흔드는 안철수 돌풍’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참신한 인물을 내세워야 정권도 교체할 수 있고 인간답게 살 수도 있다는 남녘 민심이 안철수 돌풍을 몰아왔다”고 보도했다. “남조선 인민들은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패거리 싸움만 하는 썩은 정당들에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음을 통절히 느꼈다”는 주장도 했다. “안철수 돌풍은 썩어빠진 정당 정치에 대한 인민들의 불신에 기초한 것인 만큼 앞으로도 남조선 정국을 휘저을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까지 내놨다. 왠지 입맛이 쓰다.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도 21일 “남조선에 난데없이 ‘안철수 돌풍’이라는 것이 일어나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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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과 민주조선은 북한의 양대 기관지다. 각각 당과 내각의 공식 입장을 대변한다. 남한 상황이 재미있고, 관심이 간다고 그냥 보도하는 게 아니다. 북한이 어떤 나라인가. 대포동2호 미사일을 쏠 때도 미국의 독립기념일(미국시간 2006년 7월 4일)에 맞췄고, 개성공단에서 남한 직원을 쫓아낼 때도 18대 총선 선거운동 시작일(2008년 3월 27일)에 맞췄던 나라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릴 때 억류하고 있던 미국 여기자들의 ‘범죄 행위’를 공개하는가 하면(2009년 10월 16일), 느닷없이 “우리도 우주 과학기술 경쟁에 나설 권리가 있다”고 발표하고는(2009년 2월 7일) 두 달 뒤 인공위성이라며 로켓을 쏘아 올렸다.

북한의 공식 발표나 보도엔 사전에 계산이 있고, 이유가 있으며 그 시점도 정교하다. 대북 전문가들은 이번 보도에도 북한의 숨은 의도가 있다고 지적한다. 동국대 김용현(북한학과)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척점으로 안철수 현상을 거론했다”며 “북측이 내년 대선 등 한국 정치판이 북한에 유리하게 전개되도록 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안철수 현상을 거론해 정치권을 반민주 세력으로 우회 비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반발해온 북한이 내년 대선 과정에 자기들 나름대로 영향을 미치기 위해 ‘안철수 돌풍’을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극소수의 주사파라면 몰라도 북한이 그런다고 ‘남조선의 보통 인민’들이 줄줄이 따라가지 않는다. ‘안철수 신드롬’을 부각하면 현 정부나 정치권에 대한 불만에 자극제로 작용해 북한에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란 꿈도 깨는 게 좋다. 남한 국민들은 북한 인민들과 다르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

‘안철수 바람’은 남한의 정치권이 반성하고 해결할 문제인 건 맞다. 하지만 그게 북한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북한이 도대체 남의 상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처지인가. 남북은 그동안 상호 체제 존중과 내정 불간섭의 정신을 발전시켜 왔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10·4 정상 선언에까지 그걸 담아 왔다.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서라도 북한이 남한 정치에 왈가왈부하지 않는 게 좋다. 북한이 속내를 가지고 자신을 띄운 데 대해 모르긴 몰라도 당사자인 안철수 서울대 교수는 매우 불쾌해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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