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원화가치 장 막판 30원 회복 … 브레이크 건 외환당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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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IMF·세계은행 연차총회를 하루 앞둔 22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현재 (세계) 경제 상황이 위험한 국면(adangerous phase)에 들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과 비교했을 때 회복의 길은 좁아졌으나 그 길은 존재하며, 회복을 위해 결집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주요 20개국(G20)은 예정에 없던 코뮈니케(공동선언문)를 채택하고 국제공조를 다짐했다. [워싱턴 로이터=뉴시스]


“어떠한 방향이든 지나친 환율 급변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장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15일 기획재정부 은성수 국제금융국장)

 “정부는 최근에 외환시장의 쏠림이 과도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한국은행과 함께 외환 당국으로서 이를 완화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23일 신제윤 기획재정부 1차관)

 원화가치가 속절없이 떨어지면서 외환 당국의 구두 개입 강도가 세졌다. 외환 당국의 구두 개입 표현은 대개 시장 상황을 감안해 미리 치밀하게 준비된다. 당국자의 ‘말’은 외환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당국의 의지를 반영하는 중요한 정책수단이다.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에서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로 바뀐 것은 분명 구두 개입 강도를 한 단계 높인 것이다.

 그러나 외환 당국은 최강도의 구두 개입 카드를 나중을 위해 남겨 뒀다. 과거 외환 당국의 구두 개입 사례를 보면 “(시장에 개입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 “투기세력을 좌시하지 않겠다” 정도가 가장 강한 표현으로 꼽힌다. ‘투기세력’까지 언급할 지경이면 외환 당국의 ‘감정’까지 실려 있다는 점에서 시장 개입이 임박했거나 이미 대규모 물량을 투입해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당국이 초강수의 구두 개입 카드를 아껴 놓은 것은 유럽 재정위기로 촉발된 국제금융시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장기전’을 각오해야 할 마당에 구두 개입 카드를 미리 다 써 버리면 나중에 쓸 수 있는 정책수단은 실탄(외환보유액)밖에 없다. 물론 한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달러를 많이 쌓아 뒀다. 외환보유액은 8월 말 3121억9000만 달러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외환보유액 역시 장기전에 대비해 아껴 둬야 한다.

 일각에선 벌써 “외환 쇼크”라고 호들갑이지만 외견상 당국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차분하다. 시장에서 달러 매도 개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원화가치 하락속도를 늦추기 위한 미세조정(smoothing operation) 수준이다. 달러당 1200원 직전까지 원화가치가 떨어졌지만 1500원 선까지 떨어졌던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에 비해선 여유가 있다고 보는 듯하다. 대외건전성을 확실하게 보여 주기 위해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이를 위해선 물가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원화가치 하락을 어느 정도 용인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원화 약세는 외환 당국의 ‘조직적이고 안정적인 퇴각(organized retreat)’에 가깝다.

 정부는 이날 주요 수출대기업의 재무담당 임원들과 만나 외환시장 안정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쌓아 놓고 매도를 늦추는 ‘래깅(Lagging)’ 전략을 자제해 달라는 주문을 한 것으로 관측된다.

 속도 조절을 원하는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으로 환율은 당분간 ‘숨고르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모처럼 13.8원 오른 1166.0원으로 마감했다. 장중 한때 1196.0원까지 떨어졌으나 외환 당국의 개입으로 막판 30원가량 반등한 것이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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