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벌 상속의 바른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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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은 최근 삼성SDS가 이건희(李健熙) 삼성회장 일가에 거액의 신주인수권부채권(BW)을 발행키로 한 결정의 행사를 유보토록 가처분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주총의 특별결의 없이 시가보다 현저히 낮은 값으로 채권을 발행키로 한 것은 절차상 위법' 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절차상 하자 없다' 는 1심의 기각결정을 완전히 뒤집은 것으로, 앞으로 진행될 본안소송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번 가처분결정으로 인해 '편법 상속' 의 문제점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안은 비단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최근 늘고 있는 BW나 전환사채(CB)를 통한 재산 이동의 적법성, 나아가서는 이들의 상속 행태에까지 영향을 미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법원은 본안소송 때 법과 제도에 의거, 논쟁이 되는 부분의 문제점과 적법성을 철저히 따져 재론의 여지가 없는 명쾌한 선례를 남겨야 할 것이다.

과연 재판부가 '소액주주 권리' 와 재벌에 대한 도덕성 요구 여론, 그리고 현행 법.제도의 맹점 사이에서 어떤 절충점을 찾을지 두고볼 일이다.

아울러 재벌들도 이번 일을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물론 '가진 자' 에 대해 무조건 사시적(斜視的)인 시각을 보내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가 여론몰이나 포퓰리즘에 편승해 재벌 팔을 비틀고 가진 자에 대한 적대감을 조장하는 행위는 극도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재벌이라 해서 절세(節稅)를 하지 말라는 것은 무리다.
'돈 되는 곳은 지옥이라도 간다' 는 기업 속성으로 볼 때 도덕률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내에서 손꼽히는 세계적 기업들이 계속 법망을 피해가는 편법을 동원, 변칙상속 시비에 휘말리는 모습은 보기에 딱하다.
법을 따지기 이전에 좀더 정정당당한 길을 택하는 의연함을 보여야 한다.

왜 외국처럼 기업인을 존경하지 않느냐고 불평하기에 앞서 스스로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삼성은 "지난해 2월 사채발행을 결정할 당시 주가는 지금의 10분의1밖에 안됐기 때문에 특혜는 아니다" 고 주장한다.
하지만 선도적 기업으로서 삼성은 대기업을 보는 국민의 시각을 의식해 도덕적 의무감을 솔선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런 시비가 일어나지 않게끔 법과 제도적인 보완이 긴요하다. 따지고 보면 시민단체가 이런 문제를 법에 호소하게 된 것도 제도상 미비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도 논쟁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관계법 규정을 대폭 손질해 도덕성이나 감정 차원에서 이를 접근하지 않고 법과 제도의 틀 속에서 해결할 전범(典範)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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