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깨고 투신에 자산·예금公 돈 동원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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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한투자신탁에 대해 6월부터 단계적으로 5조원의 돈을 넣는 등 정부의 투신 정상화 방안이 가닥을 잡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정부대책은 국회동의를 통한 공적자금 조성이라는 정공법 대신 있는 돈을 긁어모아 해결해보겠다는 편법을 택한 것이어서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지원방식 역시 편법이 잔뜩 동원되고 있다.

◇ 재원마련 가능할까〓정부는 우선 예금보험공사가 자산관리공사에서 돈을 빌리는 방법 등으로 5조원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산관리공사가 가진 돈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사는 데만 쓰도록 정해져 있어 다른 기관에 돈을 빌려주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정부는 시행령을 고쳐서라도 강행할 방침이지만 자금회수가 제때 안될 경우 자칫 두 기관의 동반부실화도 우려되고 있다.

5조원도 한번에 투입되지 않는다. 당장 5조원을 마련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정부는 연말까지 단계적 투입을 결정했다. 그러나 ▶2차 금융구조조정▶대우그룹 해외채권 매입▶제일.서울은행 추가부실 보전 등 줄줄이 돈 들어갈 곳이 많아 예정대로 투신사에 5조원을 지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에 대해 권순현 대우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공적자금 조성문제에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 원칙 깬 투신사 지원〓예금보험공사는 원칙적으로 투신사에 공적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 투신사 상품은 예금자 보호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초 정부가 한투.대투에 3조원을 지원할 때 공적자금을 넣지 않고 산업.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해 출자하는 우회적인 방법을 쓴 것도 그런 이유다. 이 때문에 정부는 두 투신사를 증권사와 투신운용사로 쪼갠 다음 증권사에 돈을 넣는 편법을 짜냈다. 증권사의 고객예탁금은 예금자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원칙을 어겼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우선 두 투신사의 부실은 고객예탁금과는 관계없이 모두 실적 배당상품인 수익증권과 관련해 생긴 것이라 보전해 줄 명분이 없다.

투신 부실을 치유해야 시장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국회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충분히 설득하는 정공법을 택하자는 주장은 이런 편법이나 명분 부족에 근거한 것이다.

◇ 남은 문제 뭔가〓정부는 올초 한투.대투에 3조원을 넣으면서 추가 자금지원 없이 자체 경영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5개월도 채 안돼 추가로 5조원을 집어넣기로 했다. 처음부터 투신 정상화에 필요한 돈을 잘못 계산했거나 아니면 알고도 돈이 모자라 모른 척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5조원을 추가로 집어넣으면 한국.대한투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지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객재산을 담보로 빌려온 연계콜▶워크아웃.화의기업 채권▶담보부 대우그룹 채권▶신탁형 증권저축 등 아직 잠재 부실요인이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또 오는 7월부터 시행될 채권시가평가제도도 투신 정상화를 위해 넘어야 할 고비로 꼽히고 있다.

국민세금으로 공적자금을 집어넣는 만큼 부실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은 한투.대투의 전.현직 경영진에 대한 조사를 통해 혐의사실이 드러나면 검찰 수사의뢰 등 강력한 문책을 내릴 방침이다. 그러나 시장관계자들은 투신 부실의 근본적인 책임은 정부.감독당국에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문책도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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