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기'를 배우기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 엘레지〉가 상영되는 전주 어느 극장의 객석이 거의 들어차 있었다는 사실은 꽤 이례적인 것으로 느껴질 만한 일이었다. 첫 회를 맞는 국제 영화제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호기심이 반영된 것임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일반 관객들이 알렉산더 소쿠로프라는 이름도 낯선 러시아 감독의 진지한 영화를 보기로 선택한 것 자체가 일종의 '결단'을 감행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주말에.

하지만 이런 식의 감탄은 곧 실망감으로 바뀌고 말았다.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객석 이곳 저곳에서 불평들이 터져 나오더니 곧 많은 관객들이 하나 둘씩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극장 문을 나섰던 것이다. 그 와중에 조용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안의 분위기 자체가 매우 소란스러워지고 말았다.

관객들의 이런 반응은 비단 〈러시아 엘레지〉나 소쿠로프의 영화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스와 노부히로라는 일본의 영화 감독이 만든 〈M/Other〉를 보았던 많은 관객들의 반응 역시 뭔가 억울해 하거나 또는 분노하고 있는 자의 그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런 예화를 통해 내가 관객들의 '몰지각한 반응'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볼 때 그들의 이런 반응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러시아 엘레지〉의 경우를 다시 살펴 보자면, 이 영화는 정말이지 낯설기 짝이 없는 영화다. 초반 몇 분 동안 검은 화면만을 비춘 채 어떤 이의 목소리만 들리는가 하면, 또 거의 30분 정도 동안 아무 소리도 없이 이런저런 정사진만을 보여주기도 한다. 관객들이 봤을 때 이건 분명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영화'와는 배치되는 것일 테니 그들이 황당해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40%에 육박하는 한국영화 점유율, 〈타이타닉〉을 누르고 아시아 시장을 속속 진압하고 있는 〈쉬리〉, 드디어 도래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이런 말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이제 마치 '영화 선진국'에서 살고 있는 듯한 감회를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서 말한 예를 통해서만 보더라도 우리는 아직 '영화(문화)의 나라'에 살고 있는 게 아님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건 관객 개개인의 취향이나 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런 것들을 형성케 해주는 주변 환경, 다시 말해 영화 문화의 문제이다. 비록 그 연령은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영화를 문화로 볼진대 그것이 앞선 세대의 값진 지혜와 노력과 고투가 스며든 결과의 축적물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문화로서의 영화란 분명 학습될 때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향유하고 또한 사고할 수 있는 대상이다. 보는 눈이 길러졌을 때 바로 그 때, 역사 속의 영화 뿐 아니라 동시대의 영화도 보이게 된다. 우리가 〈러시아 엘레지〉를, 소쿠로프의 영화를 보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방식의 영화만을 볼 수 있는 사시(斜視)를 가진 우리들은 인류의 중요한 문화 유산을 향유할 기회를 잃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영화의 르네상스가 왔다며 자족해하는 것은 신속한 경제 발전만을 이루었던 우리의 '속성 근대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치욕스럽게도.

영화를 배우는 방법들 가운데 첫 번째는 당연히 실제로 다양한 영화들을 많이 보는 것이다. 그건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철학 서적을 읽고 문학을 지망하는 이들이 문학 텍스트들을 보는 것과 같다. 철학의 해설서나 문학의 주석서는 그 다음에 읽어도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에서 열리는 몇 개의 영화제들은 영화의 학습장 역할을 하는 면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매우 협소한 스펙트럼에 속하는 영화들만이 보여지는 이 땅에서 그것들은 어느 정도 그와는 다른 영화들을 보여주는 쇼 케이스 노릇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영화제란 기본적으로 '페스티벌'이라는 것, 즉 한시적인 행사임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축제란 끝남과 동시에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무런 맥락이나 사전 배경 없이 〈러시아 엘레지〉를 본 많은 관객들은 집으로 돌아가면 곧 그 영화를 잊을 것이다.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그 이상한 영화에 대한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간직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다음에는 이런 행사에 신뢰를 갖지 않을 것이라 속으로 되뇔 것이다.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영화제, 그것도 그들 눈에 뜬금 없이 이해 못할 영화들만을 보여주는 영화제는 그래서 이상한 것이다. 시네마테크 같은 일상적인 학습의 공간이 전무한 상황에서 단발 행사만 세 개의 도시에서 열린다는 것, 한국의 영화제들이 자원의 효율적인 재배치라는 측면에서 문제를 노정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