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금요일 새벽 4시]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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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카셀 루이뷔통 회장은 방문국의 명절일랑 아랑곳하지 않고 추석 연휴 첫날 입국했습니다. 명품 기업 회장님이라 느긋할 줄 알았는데 분초를 다투며 열심히 일하는 기업인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가 열심히 일하는 만큼 j도 휴일을 반납하고 일해야 했습니다. 남들 고향 가는 토요일 오전 영종도 인천공항으로 달려가야 했지요. 그 길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으면 좋겠다는 꿈은 바로 접고, 이날 공항 매장 개점 행사에 참석한 카셀 회장을 인터뷰해야 했습니다. 그는 생각보다 소탈하고 열정적이었습니다. 질문을 던지면 기자 옆에 바싹 붙어 앉아 귀를 기울이다 크게 손짓하며 대답하는 통에 몇 번이나 기자의 노트북 컴퓨터에 손가락을 찧었더랬지요. 꽤 아팠을 텐데 내색하지 않더군요. 공항 매장을 개장하기 직전 스스로 1호 손님이 돼 물건도 샀습니다. 짙은 감색 실크 넥타이를 골랐는데 수수해 보여도 가격은 210달러나 됩니다. 매장 개점 행사와 인터뷰가 끝나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사진기자 박종근 차장과 저는 드넓은 인천공항 한복판에 남겨졌습니다. 해외 나들이에 들뜬 여행객들의 밝은 표정에 더욱 쓸쓸해졌습니다. “선배, 추석인데 고향도 못 가셨네요.” “응. 그래도 지금 차가 엄청 막힌다니까 일하는 게 좋은 점도 있네.” “넌 명절에 취재 간다고 부모님이 싫어하시지 않던?” “추석 앞두고 정장 빼 입고 나가니까 은근히 좋아하시던데요.” “하하, 좋다 마신 거네.” 네, 엄마 아부지, 이번 추석엔 절대 보름달 못 볼 거라던 기상청만큼이나 잘못 짚으셨습니다~! <이소아>

◆송경애 비티앤아이(BT&I) 여행그룹 대표는 나이 스물여섯에 직원 세 명으로 여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4년 만에 매출 2500억원이 넘는 ‘대형 여행사’를 일궈냈습니다. 알고 보니 ‘직원은 나의 가족이며, 직원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그녀의 원칙이 이런 성장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송 대표는 2005년 직원들과 ‘엉뚱한’ 약속을 하나 했습니다. “앞으로 3년간 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서명하면 3년 뒤 1년치 연봉을 보너스로 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른바 ‘3+1’ 제안입니다. 여행업계는 이직률이 높은 편입니다. 그래선지 1년치 연봉의 보너스를 제안 받고도 당시 직원 70명 중 절반 정도만 서명했다 합니다. 3년이 흘렀습니다. 이 기간에 신종 플루 창궐, 금융위기 확산 같은 악재만 쌓여갔습니다. 많은 여행사가 감원하고 무급휴가를 실시했습니다. 그런데 송 대표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2009년 34명, 지난해 초에는 16명 등 ‘3년 근속자’들에게 1년치 연봉을 보너스로 지급했습니다. ‘고객과 한 약속을 지키면 회사의 신뢰가 쌓이고, 직원과 한 약속을 지키면 CEO의 신뢰가 쌓인다’는 게 송 대표의 지론입니다. 송 대표는 ‘주인의식’이라는 말보다 ‘가족의식’이란 말을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모두가 주인이 될 순 없지만, 모두가 가족이 될 순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얘기를 전하며 에디터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역시 가족 같은 분위기라서 생산성이 높은가 봐요.” 에디터가 한마디 합니다. “너 같은 동생을 둔 적이 없다.” <성시윤>

j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신문 ‘제이’ 65호

에디터 : 이훈범 취재 : 성시윤 · 김선하 · 이소아 기자

사진 : 박종근 차장 편집·디자인 : 이세영 · 김호준 기자 ,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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