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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아빠 힘내세요”에 담긴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가사로 유명한 노래가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일, 거래처와의 만남, 직장 상사와의 관계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들이 불러주는 아름다운 천상의 노래! 아무리 세상이 힘들고 스트레스 받게 해도 이 시대의 아빠들은 기쁨과 희망인 아이들이 있기에 그걸 이겨내고 참아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노래를 부르며 아빠에게 던지는 아이들의 미소, 머리에 손을 올려 그려내는 아름다운 사랑의 하트는 우리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에 충분하다.

신성진의 세상사 속 돈 이야기…자녀 1명 교육비·주거비·노후생활비 등 최소 13억여원 들어

그런데 어느 날 이 노래가 이렇게 들려온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가사는 똑같은데 평소에 듣던 경쾌한 곡조가 아니라 중압감과 긴장감이 잔뜩 담긴 곡조의 노래다. ‘아빠! 힘내세요! 아빠는 힘을 내셔야 해요, 그렇게 쓰러지면 안 돼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는 우리를 책임지셔야 해요. 우리가 받고 싶은 교육, 우리가 누리고 싶은 여유가 모두 아빠에게 달려 있잖아요!’

아빠를 보고 밝은 얼굴로 다가오며 부르는 아이들의 노래를 이런 곡조와 이런 가사로 듣게 될 때는 참으로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그리고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짐, 평생을 살아가면서 감당해야 할 경제적인 무게를 생각하게 된다.

도시가구 월 평균소득 26년 모아야
애써 눈감고 싶고, 모른 채 지나가고 싶은 현실들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올 때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생겼어요”라는 말에 기뻐했고, 아이들이 “엄마, 아빠”라고 말할 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지만 이 시대 가장들이 직면한 현실은 매우 불편하다. 자녀양육비 2억6204만원! 한국보건사회연구소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식료품비, 의복비, 공·사 교육비, 교통·통신비 등을 포함하면 자녀 1인당 대학졸업 시까지 총 양육비는 2억6204만원이 필요하다. 필자처럼 자녀 2명이면 5억원, 3명의 자녀면 7억8000만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아파트 값 4억5150만원. 조사하는 시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2011년 8월 현재 서울 아파트 가격은 평균 3.3㎡당 1806만원이다. 서울에서 전용 85㎡ 아파트를 구입하고자 할 때 필요한 돈은 4억5150만원이다. 최근의 전세난도 만만찮아 부동산서브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세 가격도 2억5048만원에 도달했다.

결혼비용 1억7542만원. 결혼정보회사 좋은만남 선우에 따르면 2000년 8278만원에 불과했던 결혼비용이 2009년에는 2.1배로 올라 1억7542만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자녀가 경제활동을 해서 이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최근 20대의 현실은 이런 비용을 감당하기에 너무 팍팍하다. 결국 부모의 부담이다.

노후생활비 4억3440만원.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10년 2월 15일부터 22일까지 20~30대 남녀 직장인 795명을 대상으로 노후준비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직장인들이 예상하는 정년 후 한 달 생활비는 평균 181만원. 매월 181만원씩 쓰면서 20년을 산다면 4억3440만원이 필요하다. 물론 평균수명이 연장되는 현실을 반영한다면 이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이 필요하다.

여기에 언급된 돈만 합해도 13억2336만원! 자녀가 둘이라면 17억6082만원이다. 13억2336만원은 2010년 현재 도시가구 월 평균소득 409만1551원을 적용해 계산해 보면 26년9개월의 소득에 해당한다. 우리 시대 아빠들이 책임지고 있는 필수적인 자금들의 합계인 13억2336만원(자녀 1명 기준)과 매월 소득 409만원이라는 수치는 ‘힘들다’는 이야기의 실체를 보여준다. 물론 이 금액에는 여가를 즐기거나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건 고사하고 의식주에 지속적으로 투여되는 비용도 빠져 있다.

미국 부통령을 역임한 앨 고어가 지구온난화에 따른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다룬 영화 ‘불편한 진실’을 통해 인류가 처한 불안한 미래를 예언했을 때 사람들은 당황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고, 무언가 행동이 필요함을 인식하기도 했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 내리고, 킬리만자로의 눈이 녹아 플로리다, 상하이, 캘커타, 맨해튼 등이 물에 잠기게 될 미래에 대한 예언은 알아야 하지만, 알고 싶지 않은 진실로 다가왔다.

가정경제에서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을 때도 비슷하다. 가계 재무상담 과정에서 많은 가정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토로한다. 명품을 사지도 않고 사교육에 남들처럼 큰돈을 들이면서 사는 것도 아닌데 항상 돈이 부족하다. 이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막연하게 느끼던 일이 명확해진다고 해서 뾰족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결단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냥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한다.

불편한 진실에 대한 태도는 결국 두 가지로 나뉜다. ‘어떻게 되겠죠’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다. 불편한 진실을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질 일도 아니고 근거 없는 희망을 가질 일도 아니다. 그리고 언론에서 사교육비에 얼마가 드느니, 노후준비에 얼마가 필요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금액에 놀라 신문을 덮어버리는 것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현실 직시하고 소득·지출 계획 다시 짜야
우리가 이제까지 애써 들춰내지 않았던 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 문제 해결은 시작된다. 먼저 나와 내 가족의 라이프 사이클을 그려보고, 그 주기에 맞는 자금 규모를 계산해 보는 고통을 감수하자.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지만 한번은 진지하고 치밀하게 전문가와 함께 가계의 건강진단을 실시해야 한다. 그러면 가장이 지고 있는 짐의 무게와 성격에 대해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과연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은 무엇인지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집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고, 자녀교육의 짐을 줄여야 할지도 모르고, 긴 노후를 생각하면서 은퇴라는 말을 생애 사전에서 지워야 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이런 선택의 주체가 본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여기서 불편한 진실을 이겨내는 힘이 나올 수 있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살아가야 할 이들에게 지혜를 줄 수 있는 책, 이 시대 아빠들의 슬로건이 될 만한 책의 제목들이 떠오른다. 스테판 폴란의 『다 쓰고 죽어라』, 이시형 박사의 『행복한 독종』, 조지 킨더의 『돈 때문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 이 책들은 이렇게 요약된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을 하지 말고, 긴 인생의 계획 속에서 다 쓰고 간다는 철학을 가지고, 은퇴하지 말고 독하게 평생 현역으로 살면서, 돈 때문에 힘겨워하지 말고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라

신성진 네오머니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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