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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현실성 떨어지는 비정규직 종합대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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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석을 앞두고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놨다. 지난 7일 감세 철회 및 청년창업대책과 8일 등록금대책에 이어 3일 연속으로 내놓은 친서민 복지 종합선물세트의 완결판이다. 추석 민심을 잡기 위해 고심한 끝에 서둘러 발표했다는 인상이 역력하다. 이 같은 정치적 배경을 제외한다면 우리나라 고용인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근로자(기간제·파견제·일일 근로자)에 대한 종합대책을 정부와 여당이 마련했다는 것 자체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이번 대책이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도외시한 채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 부담을 온통 기업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했다시피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사회문제로까지 비화한 근본 요인은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와 높은 임금구조다.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는 비정규직은 물론 중소기업 근로자에 비해 현격하게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한번 취업하면 거의 해고가 불가능할 정도로 고용을 보장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비정규직의 고용을 통해 노동수급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결국 정규직의 경직된 고용구조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 빠진 비정규직 대책은 실효성을 가지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5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저소득 근로자의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부담의 3분의 1을 정부가 대주기로 하고, 택배기사와 퀵서비스 기사 등 특수형태업무 종사자에게도 산재보험을 적용하기로 한 것은 해당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기업에 강요하는 듯한 임금 및 근로조건 차별 개선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겠다는 것은 현실성이 낮은 립서비스에 그칠 공산이 크다. 정규직에 대한 고용 유연성 확대 문제를 제쳐놓다 보니 비정규직 처우 개선책의 구체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비정규직 문제를 차별 시정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다 보면 정작 가장 절실한 고용 자체가 줄어들 위험이 크다. 비정규직을 막연히 없어져야 할 해악으로 보기보다 고용 형태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인정할 때 오히려 실질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