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물가 상승률 4%대 지키기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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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은행 김중수(사진) 총재가 물가 앞에 손을 들었다. 물가를 잡을 수 있는 금리 인상 대신 물가 목표치 올리기를 택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대외여건이 악화됐다는 이유에서다.

 김 총재는 8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직후 기자회견에서 “연간 물가상승률 목표 4% 수준 달성은 매우 도전적이고 어려운 과제”라며 “달성하지 못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수치를 말할 수는 없지만 (상향 조정할)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달 금통위에서 “물가 목표치를 수정할 의향이 없으며 수정할 단계도 아니다”고 했던 데서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 같은 입장 변화는 8월 물가상승률이 5.3%로 치솟은 게 결정적이었다. 김 총재는 이날 “(1일 통계청 발표 전) 8월 물가상승률을 4%대 후반으로 봤다”며 “과거 한은의 예상과 0.1%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 적이 별로 없는데 지난달엔 채소값과 금값 상승 탓에 예상이 빗나갔다”고 말했다.

 ‘물가쇼크’에도 불구하고 김 총재는 향후 금리 인상에 더 신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만 해도 “금리 정상화 원칙엔 변함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김 총재는 “해외여건이 불확실한데 무모하게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물가 관리가) 중앙은행의 절체절명의 과제이지만 마음만 앞서선 안 된다”며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만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도 했다. 물가 상승 위험보다 경기 하강 위험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김 총재가 물가보다 경기를 더 강조함에 따라 연내 금리 인상은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우리투자증권 박종연 애널리스트는 “상당 기간 기준금리 인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투자증권 이종범 애널리스트도 “한은이 사실상 금리 정상화라는 명분을 내려놓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계부채 문제도 금리 인상에 발목을 잡았다. 김 총재는 “금리는 매우 큰 수단으로 무차별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며 “하루아침에 빚이 많아진 것이 아니어서 하루아침에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3.25%로 유지하기로 했다. 석 달째 동결이다. 다만 이번 동결 결정은 지난달과 달리 만장일치가 아니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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