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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정치가 부른 ‘안철수 쓰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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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경진
정치부문 기자

정치권엔 ‘쓰나미’와도 같았던 ‘안철수 돌풍’이 지나가자 7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선 반성문을 써낸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 정치 불신에 대해 깊은 자기성찰(自己省察)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도 “자기 혁신을 위해 환골탈태(換骨奪胎)를 하지 않으면 민심의 폭발을 당해낼 방법이 없을 것”(원희룡 최고위원) 등의 말들이 나왔다.

 사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정치권으로 불러들인 건 바로 그들 자신이다. 한나라당 소속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서울시민이 위임한 4년간의 임기를 주민투표 투표율을 올리는 데 걸었다. 안 원장을 등장케 한 서울시장 보궐선거판을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셈이다.

 애초에 무상급식을 단계적으로 하느냐, 전면적으로 하느냐에 시장직을 걸었던 건 오세훈 전 시장의 ‘오버’였다는 말은 민주당도 아니고 한나라당에서 나오는 말이다.

 민주당이 밀었던 진보진영 단일 후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후보 단일화를 위해 뒷돈을 건넸다는 의혹은 현재진행형이다.

 ‘오세훈·곽노현 문제’가 겹치면서 이 둘을 비판하며 등장한 안 원장에게 국민들의 지지가 쏠린 건 그런 점에서 정치권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인 셈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미 ‘막장 정치’로 국민들에게 수시로 절망감을 안겨줘 왔다.

 근래 국회에서 일어났던 일들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예산안 처리 때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서로 싸우다 국회 로텐더홀의 방탄유리창이 박살 났다. 앞서 국회 상임위원회에선 여야가 해머까지 동원해 문을 뜯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에 ‘좌빨’,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꼴통보수’라고 조소하며 으르렁거리는 건 이미 뿌리가 깊은 일이다.

 문도 걸어 잠그지 않고 국민들 앞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도 이젠 익숙한 모습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의 지도부 회의는 아예 ‘봉숭아 학당’이라고 불리고 있다. 민주당 정동영·천정배 최고위원은 이날도 반성보다는 서울시장 보선 후보 경선 타령이었다. “시민 참여 봉쇄” “비민주적인 구태” “당을 무너뜨리는 일” 등의 표현을 써가며 동료 지도부를 몰아붙였다.

 그렇게 싸우다가도 이해가 맞으면 두 손을 꼭 붙든다. ‘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에 불법 후원금을 받은 소속 의원들을 구제하기 위해 ‘면죄부 법안’을 제정한다는 데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쉽게 합의했다. 여대생 성희롱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강용석 의원 제명안을 국회는 재석의원 259명 중 134명이 반대해 부결시켰다. 한나라당이 앞장서고 민주당은 방조한 결과다.

 7일 양당 주요 인사들이 써낸 반성문대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자정’(自淨)능력을 보여줬으면 한다. 막장 정치의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손 대표를 비롯해 오늘 반성문을 써낸 인사들은 한 달쯤 뒤 자기가 쓴 반성문을 다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김경진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