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인도양·태평양 분할, 관리하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박호섭
해군대학 명예교수

“중국이 항모를 갖게 되면 중국과 미국이 인도양과 태평양을 분할해 관리하자.” 2009년 5월 중국 최고위 해군 장교가 미 태평양사령관 키팅 대장에게 제의한 말이다. 대양 진출에 대한 중국의 야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를 실현하려는 듯 첫 중국 항모가 시험항해를 시작했다. 그러자 해양에서 세력균형이 무너질 것을 우려한 미국이 항모 사용목적을 밝히라고 중국에 압박의 포문을 열었다. 중국 국방부는 연구·훈련용이라고 자세를 낮추고 있지만 궈젠웨(郭建躍· 곽건약) 중국군 대령은 해방군보 기고를 통해 중국 항모는 영토분쟁 등 국익보호에 사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동아시아 해양에서 미 해군의 개입을 저지하는 ‘접근거부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대만 등 중국 근해에서 분쟁 시 미군의 접근을 억제, 지연, 거부하는 전략으로서 지금까지 미국 중심의 해양질서를 깨트리는 것이다. 중국이 드디어 미국의 해양패권에 노(No)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대만의 독립 제지는 물론 남중국해를 핵심이익으로 규정하고 영유권 분쟁에 미국 개입 시 일전불사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중국 전투기의 미 해군 정찰기 EP-3에 대한 공중 충돌을 시작으로 21세기 들어 5회에 걸쳐 미 해군 활동을 물리적으로 제지했다.

 중국의 해양 팽창 전략은 미국의 해양패권에 중대한 도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의 세계전략은 해양통제를 전제로 한 개입전략이다. 만약 중국의 도전으로 미국 중심의 해양질서가 무너지면 미국의 세계전략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미국은 결코 중국의 해양패권 도전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전진방어를 강화하고 태평양에 미 해군 세력의 60%를 배치했다. 구암기지를 확장하고 싱가포르에 최신형 스텔스 전투함을 배치하는 등 중국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해양패권 경쟁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양에서 양국 간의 한판 승부로까지 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면 충돌 시 중국은 경제가 후퇴할 뿐 아니라 지상 국경에 잠재 적국을 두고 있어 해양에 전력투구가 어렵다. 더욱이 20년 이상 미국에 뒤진 군사기술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도 쉽지 않다. 미국 또한 금융위기로 경제가 침체되고 늘어난 국가부채로 사상 첫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위기를 맞았다. 경제회복을 위해 향후 10년간 6000억 달러의 국방예산을 삭감할 처지다.

 때문에 미·중 간 해양에서의 전면 무력 충돌은 어려우나 우발적 국지분쟁 가능성은 상존한다. 그 시기는 스웨인이 말한 ‘미국이 중국을 독단적이며 침략적이라고 생각하고, 중국은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해질 때다’. 이럴 때 핵심이익이 위협받으면 분쟁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서해상 남북한 무력충돌이다. 이때 미 항모 진입에 대항해 중국이 자국 안보를 이유로 개입해 상황 악화 시 중국은 북한 카드를 언제든지 전면에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중 해양패권 경쟁의 본격화로 한반도 안보위협의 축도 지상에서 해상으로 이동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비해 우리는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한국이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전략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은 균형함대를 건설해 유사시 주변국의 해양통제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균형함대란 독자적으로 국가 전략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함대로서 그 수단은 이지스 구축함에 핵추진 잠수함과 중형항모로 구성된 기동함대가 되어야 한다. 특히 기동함대가 신속한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제주 해군기지가 조속히 건설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중단됐던 해군기지 건설이 정상 추진된 것은 천만 다행한 일이다. 제주 해군기지가 한국의 평화와 번영을 여는 관문이 되어야 한다.

박호섭 해군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