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죽었다는 말, 쉬빙에게는 헛소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쉬빙의 대표작 ‘천서’(天書·Book from the Sky·1991)의 설치 장면. 전시장 전체를 뒤덮은 고서(古書) 설치에 관객은 일단 압도되며, 다가가서는 그것이 한자도 아니고, 내용도 없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충격을 받는다. 문자가 해당 문화권에서만 보편적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21세기 문자예술의 신기원을 이룬 작품으로 꼽힌다.


어머니는 베이징대 도서관 사서였다. 바쁠 때면 어린 아들을 도서관에 두고 일했다. 읽을 수 없는 거대한 책더미, 그는 그 속에서 성장했다. 소학교에 들어가 글을 읽을 수 있게 됐지만 이번엔 읽을 책이 없었다. 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기(1966∼76).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 어록만이 책이었다.

 1989년 천안문 사태가 터졌다. 전위예술가로서 운신 폭이 좁아진 그는 이듬해 미국 위스콘신으로 건너갔다. 영어에 서툰 그가 주로 시간을 보낸 곳은 메디슨대 도서관. 어렸을 때처럼 그는 읽을 수 없는 책들에 포위됐다. 그리고 그 책들에 매료됐다.

쉬빙

 쉬빙(徐冰·56). 중국 미술가 중 가장 전통적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다. 서예와 탁본에 기초한 대규모 설치작품으로 문자와 소통의 문제를 말한다.

직접 고안한 가짜 문자로 목활자 4000개를 만들고, 그 활자로 인쇄한 책을 묶어 전시장에 설치한 ‘천서’(天書·Book from the Sky·1989), 만리장성을 탁본으로 떠낸 거대 설치작업(Ghost Pounding the Wall·1990), 알파벳을 조합해 한자를 닮은 문자로 만들어 서구 관객들에게 서예 퍼포먼스를 벌이게 한 ‘신영문서법’(新英文書法·1994∼96) 등이 대표작이다.

 그는 현대미술의 정점인 뉴욕에서 중국 전통양식을 부활시켰다. ‘문자예술의 창조자’라고 불린다. 2007년 미술전문지 ‘아트 뉴스’는 ‘105년 뒤에도 살아남을 작가’로 쉬빙을 꼽았다. 쉬빙은 2008년 고국에 돌아왔다. 중국 최고의 미술대학인 베이징 중앙미술학원(中央美術學院) 부원장으로 초빙되면서다. 5일 그를 이 학교 부원장실에서 만났다.

 -문자에 예민하다.

 “중국인이면 대체로 그럴 거라 생각한다. 중국인에게 그림과 서예는 같은 동작이다. 예컨대 ‘산(山)’을 쓰는 것은, 산을 그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한자가 상형문자임을 상기시킨다. 반짝이는 알루미늄으로 주조한 ‘새 조(鳥)’자 400여 개가 비상하는 설치 ‘살아있는 단어(Living Word)’가 그렇다. 워싱턴 스미소니언 미술관에 전시돼 반향을 일으켰다.

쉬빙의 ‘남·유·여(男·幼·女, men·nursery·women)’. 픽토그램 아래 한자를 닮은 부호를 잘 들여다보시라.알고 보면 알파벳으로 구성돼 있다. 동양인은 한자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읽을 수 없음에 당황하고, 서양인은 그 반대로 반응한다.



 -당신 작품은 보는 것인가, 읽는 것인가.

 “내가 붙잡고 있는 화두다. 나는 그 두 가지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채 뒤섞이도록 한다. 가령 ‘천서’는 목활자 인쇄라는 정교한 수공을 거쳐 나왔다. 이것이 읽을 수도 없고, 내용도 없다는 사실에 관객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왜 문자를 주제로 삼나.

  “운명이었다. 돌이켜보니 그렇게 됐다. 아버지는 베이징대 역사학과 직원, 어머니는 그곳 도서관 사서였다. 어린 시절을 베이징대에서 보냈다. 문화혁명의 발원지였다. 사면에, 바닥에까지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당시 ‘붓을 칼과 총으로 사용해 온 힘을 다해 내려쳐라’는 말이 있었다. 흑색분자에게 그가 왜 나쁜지를 설명한 모자를 씌우고 팻말도 걸었다. ‘문자도 사람을 죽일 수 있구나’라고 느꼈다. 중학교 때 일이다.”

 한때 ‘망명 예술가’였던 그는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영국박물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한다. 후배이자 제자인 중앙미술학원 학생들에게 그는 “문제를 피하지 말라. 그것을 어떻게 예술적 언어로 표현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형식미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느냐”라고 강조한다. 그것이 그가 살아온 방식이다.

 오전 내내 인터뷰에 응한 그는 바로 뉴욕으로 떠났다. 9·11 테러 10주년 기념전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퍼온 흙으로 전시장 바닥에 혜능(慧能·638∼713) 선사의 시구를 적은 ‘먼지는 어디에서 왔을까’(Where the Dust Itself Collect·2004)의 뉴욕 첫 전시다. 그렇게 그는 전통 장르에 매이지 않고 세상의 문제에 대해 작품으로 발언해 왔다. 그의 작품 일부가 1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인 ‘타이포잔치 2011’에 전시 중이다.

베이징=권근영 기자

 
◆타이포잔치=서체 예술을 주제로 열리는 국제전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최정심), 한국타이포그래피학회, 예술의전당 공동주관으로 앞으로 2년마다 정례화할 예정이다. 올해는 쉬빙을 포함해 일본의 다나카 잇코(1930∼2002), 한국의 최정호(1916∼88) 등 한·중·일 대표작가 107명의 서체 예술이 출품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