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 제모습찾기…월드컵 개최전까지 공사 마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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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남산.인왕산과 함 서울의 내사산(內四山)으로 불려온 낙산(駱山)을 복원해 공원으로 새단장하는 작업이 26일 기공식을 시작으로 본격화됐다.

이 사업으로 북악산~남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중심 녹지축이 되살아 나며 서울시민들은 6만여평의 쉼터를 되찾게 된다. 무엇보다 1990년대초 시작한 '남산 제모습찾기' 에 이어 서울시가 추진해온 서울의 녹지 원형복원 작업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 들었다는 점에서도 뜻이 깊다.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나각순(羅恪淳)위원은 "낙산은 예로부터 솔숲이 우거지고 맑은 계곡물이 흘러 시인 묵객들이 즐겨찼던 명승지였는데 뒤늦게 나마 푸르름을 되찾는다니 반가운 일" 이라고 말했다.

◇ 훼손의 역사〓종로구 동숭동과 성북구 돈암동 일대에 위치한 낙산은 낙타등처럼 생겼다고 해서 낙타산(駱陀山)으로도 불린다.

해발 1백25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조선왕조가 한양에 도읍(1394년)하면서 왕궁이 위치한 주산(主山) 북안산의 서(西) 백호(白虎)역할을 하는 인왕산과 대칭되는 동(? 청룡(靑龍)으로 커다란 의미가 부여됐다.

40년 낙산일대 16만7천여평이 낙산근린공원으로 지정됐으나 95년까지 13회에 걸쳐 13만여평이 야금야금 해제됐다. 한국전쟁과 경제개발기에 공원을 무단 점유한 판자촌으로 인해 훼손이 심했다.

특히 69~71년 '불도저' 로 불리던 김현옥(金玄玉)시장이 판자촌 정비를 위해 5층 짜리 시민아파트 41개 동을 산정상까지 지으면서 경관 훼손은 극에 달했다. 남산 훼손이 일제에 의해 적극적으로 이뤄졌다면 낙산은 우리 손에 의해 마구 파헤쳐졌던 것이다.

◇ 복원 작업〓26일 고건(高建)시장을 비롯 주민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복원 기공식장에는 낙산을 상징하는 대형 '청룡 연' 이 하늘에 띄워졌다. 97년초 공원화 계획이 발표된지 꼬빡 3년만이다,

당초 시는 95년 조순(趙淳)시장 재임시절 복원계획 마련에 착수했으나 20층 아파트 재개발을 추진하던 주민들을 설득하느라 늦어졌다.

시는 앞으로 보상.공사비등 8백41억원을 투입, 월드컵 개최전인 2002년 5월까지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공원녹지과 박문수(朴文守)팀장은 "인공 시설물 하나를 더 짓는 것보다 상처입은 낙산을 푸르게 하는데 주력할 방침" 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소나무 7천여그루 등 39종의 나무 11만 그루와 진달래 등 관목류 10만 그루를 심는다.

90년대초 복원된 성곽을 따라 동대문~혜화문 2.1㎞구간에 산책로를 겸한 역사탐방로도 조성한다.

특히 젊은이들의 동적인 공간인 대학로와 정적인 공간인 성곽 사이에 조각과 음악을 동시에 감상하는 조각정원을 조성한다.

조선시대 이수광이 지봉유설을 집필한 비우당(庇雨堂)이 복원되고 운동시설.화장실.광장 등 시민 편의시설도 확보된다.

강홍빈(康泓彬)행정1부시장은 "이번 사업과 함께 인왕산 시민아파트도 연내 철거해 서울 내사산 복원을 마무리짓겠다" 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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