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는 지금 우울하다

중앙일보

입력

미국 텍사스州 댈러스의 온라인 리베이트 및 보증 취급 기업인 하우투.컴(How2.com)의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솔로몬은 지난주 곤경에 처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지난달 주식시장이 대규모의 지각 변동을 시작했을 때 1억2천5백만 달러 규모로 예상했던 주식 상장을 취소해야만 했다.

사설 자금을 끌어들여 겨우 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상장과 동시에 스톡 옵션을 팔아 현금을 손에 쥐려 했던 직원들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솔로몬은 그런 곤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본다. 그는 “주가가 폭락한 회사들은 참 안 됐지만 우리 회사가 그 축에 끼이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미국인들은 술집이나 거실에서 인터넷 주식 거래 사이트를 보며 변덕스런 주식시장에 초조해 했다. 그러나 가장 당황한 사람들은 엄청난 주가 상승으로 전례없는 호황을 누렸던 신생 첨단기업과 실리콘 밸리 사람들이었다.

지난주 금요일 주식시장이 수직 하강한 직후 인터넷 기업인들과 투자자들은 샌프란시스코의 술집과 식당으로 몰려들어 술잔을 노려보며 손실액에 대한 넋두리를 나눴다. 직장에서 일하는 도중에 주식투자를 하는 한 온라인 단타 투자자는 “지난주에 아마 20만 달러는 잃었을 것”이라며 “서른이 넘으면 직장에 다니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미칠 노릇”이라고 말했다. 첨단기업에서 일하며 역시 직장에서 주식 거래를 하는 브라이언 드리스(23)는 “천덕꾸러기 의붓자식처럼 얻어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주 5천 달러를 잃었다.

급류에 휘말린 시장 때문에 주식 상장을 위해 대기중이던 신생 기업들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안개가 밀려들 때의 비행기들처럼 뒷걸음질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주식 상장을 위해 증시가 안정되기를 기다리는 기업은 3백 개가 넘는다.

로버트슨 스티븐스社의 투자은행 부문 이사인 토드 카터는 인터넷 기업으로 떠났다가 되돌아오고 싶어하는 옛 직원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 것이 실리콘 밸리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힘든 시기를 겨우 2주 정도 겪었을 뿐이지만 역전 현상은 뚜렷하다”고 말했다.

스톡 옵션의 가치도 재평가받고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스톡 옵션은 직원을 끌어올 때뿐 아니라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지급할 때나 광고 회사를 고용할 때, 친구들과 가족들의 재산을 늘려줄 때도 사용됐다. 디즈니社의 중역을 지냈고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의 푸드.컴(레스토랑 음식 온라인 주문·배달)을 운영하는 리치 프랭크는 현금 선호로 되돌아가는 추세를 예견한다. 그는 “앞으로는 사람들이 스톡 옵션에 근거한 채용에 신중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주식시장의 대변동을 보다 냉정하게 파악하려면 실리콘 밸리와 월스트리트보다는 예금을 주식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을 살펴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초조해 하며 컴퓨터 주위만 빙글빙글 돌고 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들은 지금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하고 주가 하락 때 주식을 사라’는 오랜 철학을 신봉하는 편이다.

그들은 여전히 매수 기회가 포착되면 다시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말한다. 코네티컷州 스탬퍼드의 석수(石手)인 존 크리민스는 “세계 경제에 불황을 예고하는 어떤 요인도 찾아볼 수 없다”며 “시장이 바닥을 쳤다고 생각되면 그때가 다시 시장에 뛰어들 기회”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가 보편화되면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안정시키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의 변호사인 제임스 모렐(44)이 좋은 예다. 그는 “특히 장기 투자자에게는 지금이 아주 좋은 매수 기회”라고 말했다. 모렐도 다른 미국인처럼 아침 저녁으로 경제전문 방송 CNBC를 시청하고 사무실에서는 인터넷으로 매시간 주가를 확인하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 모렐은 싸다고 생각한 첨단기술주를 매입했다. 주식시장이 회복되지 않으면 다음주에도 같은 식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한편 다른 투자자들은 오랫동안 주식 투자에서 보이지 않던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바로 겸손함이다. TV 광고 제작자인 토니 리처즈는 쉬는 날에는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랩톱으로 주식을 거래한다. 주가가 계속 올라가던 시기에 이것은 큰 돈벌이가 되는 취미였다. 그러나 올해 들어 리처즈가 친구와 공유하는 거래계좌의 금액은 30%나 떨어졌다.

이제 리처즈는 과거의 두자릿수 수익증가가 투자 재능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그는 “우리 스스로 투자의 천재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주식시장이 호황이라 그럴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주가 폭락을 고소한 듯이 바라보고 있는 사람도 곳곳에 있다. 특히 실리콘 밸리 근처가 그렇다. 미술가 빈센트 앨보스(38)는 최신식으로 꾸며진 미션 지구에 있는 작업실을 지난해 인터넷 기업 사무실 자리로 내줘야 했다. 그의 친구들과 이웃들도 모두 그 곳을 떠나야 했다. 그는 “주가 폭락이 그렇게 나쁜 것 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증시침체가 계속되면 어떤 기업들은 대출을 갚지 못해 담보물을 잃게 되고 그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낮아지면 과거 그 지역에 모여 살던 사람들이 그 자리를 다시 메우게 될 수 있다. 물론 헛된 공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 인정하든 않든 실리콘 밸리 사람들이 주식시장을 지켜보며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