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두려운 건 정책의 모호성과 규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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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호 20면

금융위기의 조기경보 장치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면 바로 한국이다. 단기부채 수준이 높고 국제사건에 크게 영향을 받는 한국은 세계 15위권 경제국가 중 방어막이 가장 취약하다. 한국은 미국보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시장이 급락했고 자본이 이탈했다. 하지만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이들이 두려워하는 건 금융 혼란 자체가 아니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위협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아니다. 이 모든 것에 예측 불가능까지 얹은 한국의 과다한 규제다. 흔들리는 달러, 유럽의 채무, 중국의 과열만큼이나 한국에서 투자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사사건건 간섭하는 규제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지난주 우리금융 매각이 또다시 불발됐다. 당국은 잦은 최고경영자(CEO) 교체로 투자 대상으로서 우리금융의 매력을 반감시켰다. 시장 상황은 일부 입찰자를 쫓아 버렸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을 넘어서는 잠재성을 지녔다. 투자자들에게 한국의 은행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외국인 입찰자들은 한국의 거래 조건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론스타가 그 경우였다. 당국은 5년 이상 론스타가 보유한 외환은행 지분 매각을 방해해 왔다. SC제일은행을 소유한 스탠다드차타드의 난리법석 역시 투자자들을 우려스럽게 만든다. SC제일은행은 50일 넘도록 파업 중인데 한국의 은행 역사상 최장기 기록이다. 더구나 파업의 이유는 능력에 따른 성과급제 반대였다.

투자자들은 론스타와 우리금융의 케이스에서 명확성을 원한다. 향후 한국의 금융 부문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명료한 답을 듣고 싶어한다. 규제의 모호성(regulatory ambiguity)이 왜 우리금융에 입찰하는 투자자가 없는지 이유를 말해 준다. 이런 것들은 한국에 큰 손실이다.

최근 한국 시장의 급락은 미국과 유럽 상황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자본 이탈에 대한 공포는 투자자들을 혼란케 하는 여러 규제를 낳았다. 며칠마다 자본 통제, 과세, 외국환 채권을 사는 기업 등에 대한 새로운 지침이 나왔다.

이런 임기응변식 정책은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투자자들은 원화 자산에 머물고자 하는데 왜 이들이 떠나게 만드나. 내가 서울에서 만난 외국 은행가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한국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지만 규제는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한국은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국의 연성장률은 3.4%에 이르고, 패닉에 빠진 시장을 위해 한국은행은 기준 금리를 3.25%로 동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 금융시장이 엉망이 된 것처럼 한국도 기회를 놓치고 있다. 정책 결정자들은 경제 안정을 원한다면서도 행동은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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